가족 그리고 나

지난 추억을 그리워하는 아빠와 작은 딸

안동꿈 2010. 2. 19. 23:42

이제 중학교에 올라가는 작은 딸이 저녁에 샤워를 하고 나와서 수건으로 열심히 머리의 물기를 닦다가 아빠를 보고 하는 말

" 아빠, 예전에 어릴때 내가 샤워하고 나오면 아빠가 수건을 펼쳐들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빠가 내 머리 다 말려주고 그랬는데 " 

 

딸의 그 말을 듣고 내가 더 놀랐고, 동시에 남편의 얼굴빛을 살폈다. 왜냐하면 작은 딸이 좀 크고나서부터 남편은 어릴때 아빠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며, 쫓아다니며 좋아했던 딸과의 추억을 가끔씩 들먹이며 '이젠 변했어' 하면서 기운빠져했고, 나는 '다 그런거라고 새삼스럽게 그런다고' 핀잔을 주던 중이었으니까.

 

남편이 가장 자주 들먹이는 딸과의 추억으로는

아빠가 밖에서 돌아오는 시간쯤되면 어떤 즐거운 놀이에 빠져있다가도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빠의 발소리를 기억하고 쏜살같이 현관문 앞에 달려나가 아빠를 보면 더할 수 없는 기쁜 표정으로 아빠를 맞이하는 작은 딸이었다. 집에서 작은 딸의 그 행동을 빠짐없이 기억하는 나였기에 남편의 그 그리움을 다 이해할 수 있었고, 그 허전함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날은 한술 더 떠서 이렇게 키워놓으면 어느 말뼈다귀 같은 남자 하나 데리고 와서는 '아빠, 나 이 남자 사랑해요. 이 남자 없이는 못살아요' 할 것 아니냐고, 혼자 소설을 쓰고, 난리도 아니다. 이 남자의 딸 사랑을 누가 말리랴.

 

혼자 짝사랑에 빠져 돌아올리도 없는사랑을 추억하듯 기운빠진 남편에게 이 사건은 나도 남편도 무척 놀라게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마치 남편에겐 작은 딸의 사랑고백과도 같은 것이었다. 요즘 한창 사춘기를 지나며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둘째딸. 우리딸도 어릴적 아빠와의 추억을 잊지 않고 있다는게  나도 남편에게도 기특한 일로 여겨졌다. 남편의 표정은 마치 무척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고백을 받은 것 같은 행복에 겨운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