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우리집 딸들의 출생기

안동꿈 2010. 3. 6. 23:26

요즘 고등학생이된 큰 딸의 등교시간이 중학생때보다 40여분 앞당겨지고 학교도 더 멀어져 덩달아 나도 아침 시간이 앞당겨졌다. 새벽기도 갔다가 서둘러 돌아와야하고 잠시 눈 붙이는건 꿈도 못꾼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지 큰 딸이 자기 친구중에는 아침에 자기가 밥 챙겨먹고, 등교하기 전에 아빠, 엄마, 동생까지 깨우는 친구가 있단다. 한 번은 그 친구가 식구들 깨우는걸 잊고 등교하였더니 엄마가 나중에 '왜 안깨웠냐고? 식구들 다 늦게 일어나서 동생이 지각했다'고 하더란다. 아마 그 친구 부모님이 밤 늦게까지 장사를 하시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침 챙겨먹고 갈테니까 엄마는 신경쓰지 말란다. 비교 대상이 독특한 상황의 친구인 탓에 그런 기특한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엄마가 딸내미 아침밥 챙겨주는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가 있다고 그걸 못하겠느냐고 대답해 주었다.

 

세월이 흘러가니 실려서 여기까지 왔지만, 숨 한번 고르고 돌아보니 참 분주하게 온것 같다. 마음도 생각도 여전히 모자라고 예전 그대로 머물러 있는것 같은데 아이들이 벌써 나의 마음과 생각이 멈춘 거기까지 와있다.

 

그런 큰 아이가 태어난 날은 무더운 7월의 토요일이었다. 아침부터 산통이 왔지만 참을 수 있을때까지 참아보기로 했다. 가난한 신혼초 시장골목의 작은 전세집을 얻어 살던 때 첫째를 가졌고 배불러서 다니는걸 본 시장 아주머니들이 한결같이 '배아프다고 바로 병원가면 밤새 아무것도 안 먹이고 산고를 겪다가 기운이 다빠져서 아이낳으려면 정말 힘들어서 고생한다'고 배가 아파서 도저히 못견딜 때 병원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아침부터 배가 아팠지만 점심까지 챙겨먹고 2시가 넘어서, 다니고 있던 개인 산부인과에 당시 아가씨이던 둘째 시누와 같이 갔다. 병원에서는 나의 몸 상태를 체크하더니 의사와 간호사 할 것 없이 모두들 긴박하게 움직였다. 관장 등 여러가지 과정을 서둘러 이행하느라 침대에 누워 통증을 누릴 여유도 없이 결국 병원간지 40분만에 출산을 했다.

 

첫째를 그렇게 위험하게 출산하고 나서 둘째는 조금 일찍 병원을 찾았고 한 시간여를 누워서 산고로 힘은 들었지만 언제 출산할지 알 수 없어서, 간호사를 불러 저녁도 못 먹고 기다리는 남편에게 '저녁먹고 오라'고 전하라고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간호사가 그말을 전하며 산통으로 죽을동말동하면서 남편 저녁 챙기는 산모는 처음보았다고 하더란다. 결국 나의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둘째마저도 낳을 때 같이 못있어준 무심한 아빠로 만들어 버렸다.

 

가끔씩 아이들에게도 들려준 이 독특한 출산기. 

자녀를 많이 낳든 적게 낳든 엄마가 된 사람들에게 있어 자기 자녀의 출산기는 모두 특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