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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눈치우기

안동꿈 2010. 3. 11. 08:29

새벽 3시에 내려진 대설주의보

5시에 제설작업을 위해 비상근무가 소집됐다. 급히 아침식사로 강된장을 끓여놓고 옷을 챙겨입고 출근했다. 부산에서는 귀하디 귀한 설경을 위해 디카를 가져갈까를 아주 잠깐 생각했다. 그러나 들고가는거야 주머니에 넣어가면 그만이지만 나에겐 딱 그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준비되지 않아 그냥 집을 나섰다.

 

범어사 밑 약속된 장소로 갔더니 벌써 제설삽으로 몇몇 직원들이 열심히 눈을 치우고 있었다. 고개들어 먼산 설경을 살필 여유도 없이 몸이 후끈거리도록 2시간여 제설작업을 하였다. 이미 얼어붙은 눈은 남자직원들이 하는걸 곁눈질로 보며 발로 삽을 탁탁치면서 눈을 치우는 모습이 남들 눈에는 꽤나 우스꽝스러웠으리라. 

 

3월달에 부산에 내린 눈.

몇 시간만 지나면 따뜻한 기온에 금방 흘러내릴 눈을 기어코 삽으로 퍼내는 작업이 참으로 무의미한 몸짓 같았지만, 또한 평소 눈을 당해보지 못한 시민들에겐 공포의 눈이기에 스스로 녹을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입장일 것이다.

 

점심때 식사하러 나와보니 길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눈. 먼산의 남은 눈이 이제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아름답지만 눈과는 기어코 화해할 수 없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