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내가 다시 열일곱살이 된다면 - 딸의 열일곱에 부쳐

안동꿈 2010. 5. 18. 18:27

' If I were seventeen again' 이라는 글을 고 2때 영어 문제집 지문에서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 우리 학교와 다른 어떤 출판사의 영어교과서에 수록된 글인 것 같았다. 열여덟인 고2때 느끼는 '내가 다시 열일곱살이 된다면'이라는, 시 같기도하고 수필 같기도한 그 글은 내 마음을 잔잔히 흔들어 놓았기에 그 글을 편지지에 정성껏 베껴서 친구에게 전해 주었었다.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있는 그때 생각은 열일곱이라는 나이가 그토록 아름다운 나이인가. 그 글을 읽은 후에 갑자기 열여섯은 너무 어린것 같고 열여덟은 너무 늙은것처럼 느끼기도 했었다.

 

아무리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글이라도 입시 지옥의 한가운데인 고 2때 영어문제집에 실린 지문에 마음이 동한 걸 보면 그때 우리는 꽤나 여유로운 여고시절을 보낸 것 같다.

이 글을 다시 읽고 싶던 차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정말 반가웠다.

 

내가 다시 열일곱살이 된다면

나는 캔터키 언덕의 농장에서 나무와 초원 그리고 강과 함께 자라고 싶다.

개 한 마리를 키우며 함께 사냥을 가고 싶다. 개짖는 소리와 함께 별들과 밝은 달빛 아래 언덕에 서 보지 못한 열일곱 소년은 가장 위대한 뭔가를 놓치는 것이다.

 

내가 다시 열일곱살이 된다면

땅을 일구고 씨를 심고 푸른 어린 식물이 자라는걸 놓치지 않을 거다.

갓 벤 건초 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사람은 어디서도 맡아볼 수 없는 가장 좋은 냄새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내가 다시 열일곱살이 된다면

고등학교에서 꼭 하고 싶은게 있다. 많은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들을 알고 싶고, 여러 선생님에게서 여러 과목을 공부하고, 무엇보다 운동을 열심히 하여 몸을 강하게 하고 싶다.

나는 정직으로 공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나의 신념을 위하여 참아낼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될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끄는대로 갈 것이다.

 

열일곱은 인생에서 가장 짧은 해이다. 나에게는 그랬다.

캔터키의 4월과 같은 경이로운 해이다.

너무나 천천히 와서 너무나 빨리 가버렸다.

 

마음에 담아있는대로 옮겨본다.

내가 열일곱일때 혹은 그 전후에 매일 풀을 베어 소를 먹이고 염소와 소가 새끼 낳는것도 마음졸이며 기다렸고 쏟아질 듯한 별들이 가득한 저녁에 마루에 나와 팔베개를 하고 누워 마음껏 노래도 불렀고, 폭풍우 치기전 스산한 날엔 일제히 누웠다가 일어나곤하는 초원의 풀들을 보기위하여 언덕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내가 다시 열일곱살이 된다면 다시 그 일들을 반복할 것이다. 지금의 촌스런 나를 만들어낸 시간들이지만 결코 그것 대신 다른 어떤것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우리 딸이 열일곱살이다. 시인이 노래한 대로 참으로 경이로운 해이다. 그러나 그는 이틀에 한번씩 밤 11시 반에 집에 돌아온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연예인들의 얼굴에서나 발견하는게 고작이고, 시험 성적외에 가슴 두근거리게 할 것이 별로 없는 참으로 안타까운 열일곱을 보내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열일곱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감동이 되어 그 마음 깊숙한 곳에 부딪혀 왔을때 그것이 그의 인생여정에서 얼마나 큰 동기가 될런지를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인강 듣다가 게임 한 판 한다고 쿵쾅거리면 이 에미 가슴부터 쿵쾅거리고 시험기간에 안색이 안 좋으면 참아내지 못하고 물어보기 바쁜 이 엄마가 열일곱살 딸을 위해,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그 연한 잎이 나는 걸 지켜보자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폭풍전야의 그 풀파도 치는 언덕에 하루만이라도 서 보자고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그만한 용기가 없다. 나는 그런 아름다움을 많이 누렸는데 그는 많이 누리지 못함에 대한 사죄를 그저 닦달하지 않는 것으로 , 그저 뒷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믿어주는 것으로 대신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