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그는 지금도 내게서 거절당한 줄 알고 있을까.

안동꿈 2010. 8. 26. 13:34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지난 과거 어느 한 토막의 추억이 불쑥, 그것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 말이다. 대학 2학년 즈음인 것 같다. 우리는 늘 넷이서 붙어다녔다. 그리고 지금 그 넷이 모두 직종을 달리해서 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걸 보면 어지간히 개성없는 대학시절을 보낸 것 같다. 밖에 나가면 고등학생보다 더 고등학생 같았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가 넷이면 둘씩 더 친한가 보다. 특히 나와 더 가까운 그 친구와 나는 좀 더 심했다. 대학 4년 동안 미팅 한번 안했다고 하면 대충 짐작할 것이다. 우리는 청춘의 환희 보다 고뇌에 더 깊은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감동적인 책 한 권을 읽고나면 그 책 분량보다 더 많은 감상을 서로 얘기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았다. 결국 사람의 속내는 말로서 표현되는 것이니까, 종일 붙어다니며 얘기를 했으니 자신 조차도 정의하지 못한 자신의 속마음의 갈등을 그대로 쏟아내 놓았으니 상대방이 자신이고 자신이 상대방이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우리를 헷갈려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는 도서관을 굳이 고집하지는 않았다. 메뚜기도 노하우가 생겨서 주인이 장시간 자리를 비울지를 책의 진열상태 등으로 대충 파악이 되니, 새벽밥 먹고 등교할 필요성을 별로 못느꼈다. 시험기간이 되면 그나마 연명하던 메뚜기 신세도 마감하고 우리는 소강의실을 찾았다. 그곳도 조용하고 오히려 자유로운 공기속에서 공부하기에 괜찮았다.

 

소강의실을 찾으니 그곳을 즐기는 부류들이 눈에 뜨였고, 자주 마주치니 자연히 안면이 생겼다. 그 중에 복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반듯하게 생겼고 늘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기억나는 일은 학교에서 재학생에게 혜택이 있는 여름방학중 원어민 영어과정이 있었는데, 나는 초급반에 있을때 유학준비중인 교수님등 쟁쟁한 분들이 속해있는 고급과정에서 그가 수강하는 것이다. '실력도 있는 사람이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하교길에 친구들과 같이 정문을 지나는데 그가 거기 서 있었다.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 다른 날과 다르다고 느꼈다. 그러나 여느때처럼 무심히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지나갔다. 며칠후 우연히 가방을 정리하는데 찢어진 노트 메모지에 ' 몇시(지금 기억이 안남)에 정문에서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메모지를 발견했다. 그것도 가방 앞쪽 평소 잘 손데지 않는 곳에 넣어 놓고선 어찌 그것을 찾을거라고 거기 꼭꼭 숨겨 놓았는지, 아마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의도 였으리라.

 

그가 이렇게 용기를 낸 데는 늘 오가며 마주치는 내가 남자친구가 없다는 확신과 말은 하지 않아도 가끔씩 마주치는 눈빛에 어느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상형이니 매력있는 사람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지만 용기를 내게 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내가 거절당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용기의 가장 필수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며칠후 그 메모지를 발견한 나는 지금에 와서 '메모지를 이제 발견했다'는둥 구차한 변명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깨끗한 내 청춘의 연애 노트에 흠집있는 사건이 기록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면 제때 발견했다면 그를 만났을까, 아닐까. 그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많이 생각하게한 사건이었다. 그후 그와는 그전 만큼 자주 마주치지 않았다고 지금도 기억된다.

 

이 콩트의 후기로나 적힐만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내가 직장생활 초년때 직장에 그와 같은과 후배가 들어왔다. 우연히 그의 근황을 물어보니, 지방 신문사 기자로 입사했다는 것이다. '그래, 성실하더니 잘되었군' 내 반응의 전부이다. 후회 하느냐고? 천만에. 거기에 내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더 위대하신 분의 손이 처리하신 일에 대해서는 나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