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책읽기

엄마를 부탁해 by 신경숙

안동꿈 2010. 9. 9. 20:21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속에 계속해서 흐르는 두 줄기 생각은 우리의 엄마들은 모두 그랬다는 것과 나는 결코 그런 엄마가 되지 못하다는 것. 그러니까 이 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야기들은 늘 나의 엄마에 대한 추억과 내 딸들에게 엄마로서의 나의 위치를 바쁘게 확인하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날부터 어제 마지막 읽은 시간까지 버스안에서, 거실에서, 식탁에서, 화장실에서 심지어 사무실에서까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고 다녔다. 이번 일주일여 시간동안 나의 화두는 단연 '엄마'였다. 엄마를 잃은지 이십년이 훨씬 지나, 나의 아이가 그때의 내 나이가 된 지금은 저만치 밀려있던 그리움인데...

 

엄마의 한없는 사랑을 받고 지금은 다 장성하여 각자의 바쁜 삶을 사는 자녀들에게 엄마를 잃어버린 소식. 그것이 결국은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상태로 이어지고 만다.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엄마는 보고 싶은 걸 참아온 가족들에게, 받기만 하고 돌려줄 사랑이 가슴에 가득 고여있는 가족들에겐 그 엄마가 얼마나 아까운 존재이며(소중하여 아껴아껴두었는데 마음껏 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그 안타까움), 참으로 목이 타고, 가슴이 타들어가고, 애가 끊는 사연인지를 나는 안다.

 

장성하여 엄마 곁을 떠나기까지 그들이 함께한 그리 길지 않은 여정중에 엄마와의 추억이, 사연이 그토록 끝도없이 퍼 올려지는 데에 새삼 놀랐다. 그건 비단 그 가족들만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이땅의 우리 모든 평범한 가족들도 동일할 것이다.

 

나를 갑자기 눈물나게 한 사연중에 한가지는 아내를 잃은 남편의 회상에서다. 남자가 스물, 여자는 열일곱에 서로 얼굴도 모르고 혼인을 해야하는 처지에 이 남자는 얼굴도 한번 보지 않은 여자와 살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앞둔 어느날 무슨 마음으로 여자가 사는 진뫼로 건너갔다. 여자가 마루에 앉아 근심에 찬 얼굴로 수를 놓다가 일어나 목화밭에 있는 엄마를 찾아간다. 그리곤 엄마에게 '나 시집 안가면 안돼?, '뭐야?', '엄마랑 같이 살면 안돼?', '안돼', '왜 안돼?', '그럼 산사람들한테 끌려 갈테냐?' 여자가 끝내 목화밭에 주저앉아 다리를 쭉 뻗더니 울음을 터뜨린다. 장모가 달래다 같이 울음을 터뜨린다. 

 

모든 걸 참고, 모든 걸 배려해주고, 다 덮어주고, 배고픔도 모르고, 아픔도 모르는 큰 산 같은 그 엄마도 시집가기 싫어 밭고랑에서 다리를 뻗고 울어버린 시절이 있다는게 가슴 저리게 눈물나게 했다. 그런 시절이 우리의 엄마도 있을 수 있는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고, 생각해보려고도 하지 않은 그 무심함에 눈물이 났는지도 모른다. 

 

내게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한 곳은 여기이다. 「또 다른 여인」장에서 엄마는 그의 엄마를 만난다. 엄마 박소녀는 이렇게 노래한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엄마는 평생 죽도록 고생하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쓰러지셨고 끝내 일어나시지 못하셨다. 그때 나는 고2 겨울방학 끝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타지에 돈벌러 나가서 1년에 두어번 명절에나 오시고, 논밭과 가축에 자식까지 온갖 돌보아야 할 것들 뿐이니 철인 같이 살아온 엄마의 시간들. 그러나 아무데서도 위로받지 못하고 그저 멀리계신 당신의 엄마만 유일한 위로가 되었나보다. 엄마에게도 그토록 엄마가 필요했었나보다. 그 엄마를 추억하며 보낸 긴 시간들만으로 나는 충분히 엄마를 안다고 생각했었다. 끝도 없이 흘려보낸 눈물이 내 속죄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때 못다흘린 눈물이 남아 있다고 생각 못했는데, 또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큰아들 형철은 엄마가 해준 말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형철은 동생에게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엄마를 슬프게만 기억하는 건 우리 죄의식 때문일지 모른다고.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생을 보잘것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속에 담겨있는 엄마와 엄마로서의 지금 내 모습간에 엄청나게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스스로 해낸 것에 대해 감동과 감사하기보다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전달해주기 바쁘고

아프면 아프다, 추우면 춥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얘기해 왔고, 알아주길 바랐고.

내 생일이나 어버이 날을 잊을까봐 염려하고(물론 아이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을 가르치려는 것이지만)

 

거기엔 엄마를 잘 아는 아이들은 있을지언정

흔들림없는 고향의 오랜 느티나무 같은 엄마는 아닌것 같다.

'우리 엄마는 생선 살은 안 좋아하고 생선뼈만 좋아해'하는 웃지못할 사연은 사라졌지만 가없는 엄마의 사랑에 대한 뒤늦은 후회와 감동은 더 이상 느낄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소망한다.

엄마를 기억하는 매개체들은 달라질지라도 우리 속에 있는 그 엄마가 우리 아이들에게도 심어지기를. 그리고 나도 노력할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