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사랑하는 동생들아!

안동꿈 2010. 10. 9. 21:20

 맨날 앞만 바라보고, 땅만 바라보고 살다가 오늘 하늘을 쳐다보았다. 고층 빌딩숲 사이에 비친 파란 하늘이 우리가 어릴 때 고향에서 보았던 바로 그 하늘처럼 정말 파랬다. 그래서 오랜만에 너희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지금은 우리 서로 각자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우리에게 그토록 목마른 '엄마사랑'을 줄 수 있는 아이들과,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부모들이 앉으나 서나 걱정하는 자식. 그 성장의 고비마다 우리는 걱정해주는 부모님이 없어도 이렇게 다 넘기고 각자의 길을, 힘겨웠지만 성실히 지켜왔음에 또한 감사한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날을 너희들은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너희들은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 즈음이었고 나는 고3이었지. 아버지, 오빠와 나 셋은 외지에서 일과 학업중에 있을 때 시골에서 엄마와 셋이서 지내던 중 갑자기 엄마가 쓰러지셨고 병원에 가신지 몇 일만에 돌아가셨다. 고향으로 내려가서 너희들을 만났을 때, '언니야. 엄마는. 엄마는 언제와?' 하는데, 나는 이제껏 그 물음에 대답하는 것 만큼 어렵고 슬픈 일이 없었다.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져서 뒤돌아서서 '응. 금방 오신다' 그랬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친척들이  다 모인 상황이었는데 너희들만 그 사실을 몰랐었다. 그런데 나는 끝까지 그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한 기억은 없는데, 그 이후의 일들로 엄마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그 힘겨운 과정을 어떻게 견뎌냈을지 새삼 눈물이 난다.

 

장례를 치른 후 나는 고3이라는 그 무엇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길을 떠나야 했다. 그때 어린 너희들은 엄마없이 어떻게 해야할 바를 몰라하신 아버지가 복지시설 같은데로 보낼 생각을 하셨다는 걸 나중에야 듣고 나는 얼마나 통곡했는지 모른다. 나는 자췻방에서 참 많이 울었는데, 아니 울 수 있었는데, 너희들은 친척집을 전전하며 눈치밥을 먹으며 지내느라 마음껏 울 수도 없었으리라. 그렇게 힘겨운 1년여를 보낸후 우리는 모두 부산으로 이사를 했지.  

  

우리가 부산에 이사오던 추운 겨울날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버지는 댐으로 수몰된 고향집 앞으로 나온 보상금을 다 털어 부산에 집을 사 놓으시고, '너희들은 이제껏 구경도 못해본 좋은 집'이라고 소개하셨지. 20년도 넘은 오래된 집이지만 산골에서 산 우리들에게는 아버지가 말씀 하신대로 정말 좋은 빨간 벽돌의 2층집이었다. 고향 떠나올 때 이웃에서 아름아름 싸준 김치며 장류들을 새 집에 정리하며 지나간 슬픔들도 정리한 듯 오랜만에 행복감을 맛보았었다. 우리는 집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었고, 밖으로 난 계단을 다닌 적이 없는 셋째 너가 불안한 표정으로 갑자기 두 손을 바닥에 대고 기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우리는 배꼽이 빠져라 웃었지.

 

한참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때였지만 나의 아픔과 결핍만 부여잡고 견뎌내느라 더 따뜻이 더 알뜰히 챙겨주지 못한걸 생각하면 늘 가슴 아팠고 근래까지도 눈물을 자주 흘리곤 했다. 언젠가 당시 부산에 살고 있던 외사촌 오빠네가 어린이 대공원에 놀러간다고 막내 너를 함께 데려갔고 그때 찍은 사진을 후에 보았을 때, 그 한 장의 사진에 엄마사랑이 많이 필요한, 외로움 가득한 아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평소 명랑한 너였기에 순간의 방심한 틈이 너의 평소의 속내를 드러낸걸 보면서 참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엄마 가신후 꼭 3년후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여전히 어린 너희들이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스스로 등록금을 해결해가며 학업을 마친 너희들의 모습에 오히려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서 학업을 거의 마친 오빠와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적당한 때를 얻어 결혼을 하고 또 자녀들도 낳아 살고 있는 너희들이 참 대견하다. 이젠 나도 잘 울지 않는다. 너희들은 내게 늘 가슴아픈 사연이었고, 엄마아빠의 사랑이 고픈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든든한 가정들을 이루고 있는 너희들을 보게 되었고, 우리가 늘 그리워하던 따뜻한 가정이 이젠 너희들과 나의 것이 되어 있다는 걸 어느날 깨어보니 알게 되었다.

 

가정은 엄마가 늘 가운데 있어서 가족들이 들며나며 슬픈 일, 기쁜 일, 속상한 일들이 엄마에게 들어갔다 나오고 서로에게 이어지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밥솥에서 밥이 지어지듯 사랑이 구수하게 지어져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가정은 결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어 그안에서 곪다가 해결되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린 그런 엄마가 되자. 가족들이 들며날때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찾을 수 있는 엄마 그리고 아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