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결혼 17년차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
가정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결혼한 햇수와 큰 아이 나이가 비슷하지 싶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기대도 관심도 남편에게서 아이들에게로 옮겨지고, 남편이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곤 월급이 제때 들어오지 않거나 정해진 액수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에나 그럴 것 같다.
함께 산지 17년 정도 되었으면 가슴 떨리던 시절은 기억에도 가물하고, '나는 왜 이 사람과 만나게 된 걸까. 그때 그 버스만 놓치지 않았더라면...' 하는 식의 빛바랜 영화장면 같은 걸 되뇌는 것도 체념되고, 성격차이니 권태기니 하던 골목길도 다 지난 것 같다. 그리고 가끔 드라마속 멋진 남자 주인공에게 내 나이도 잊고 몰두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실망하는 철없던 나이도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적어도 반나절 정도는 삐쳐서 말도 않고 지내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그 원인은 이름하여 '기대감' 이라는 것이다. 그것마저도 없다면 오히려 큰 일날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들 일로나, 경제적인 일로나, 혹은 바이오리듬이 마이너스를 헤매는 날이라고 해두자 어쨌든 심사가 뒤틀리는 날 괜한 짜증을 부릴 때가 있다. 그러면 남자들은 그것이 무슨 남편에 대한 큰 불만이나 실망이나 되는양 굳은 얼굴로 방어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위로받으려고 끙끙거리는걸 그걸 받아주지 못하고 철통방어를 하고나서면 아내는 그만 절망하고 만다.
아내의 소박한 바램은 철없이 짜증낼때 말없이 들어주다가, 제 풀에 지치고 나면 그 어깨에 가만 손 얹어 주는 것. 아내에게서 그보다 더 큰 남편의 관심과 반응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남편들은 아내가 짜증낼때 저 짜증을 해결하려면 '내가 지금보다 월급을 두 배는 더 받아와야 될 것이다.' 뭐 이 정도의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아내들은 가끔씩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연애때야 사랑한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이 '만남' 아니면 '이별'을 의미하는 반대 개념일지 모르지만, 오래된 부부에게는 사랑한다는 말만큼이나 미안하다는 말이 사랑을 의미한다.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에는 사랑과 연민과 화해와 용서 등 모든 선한 것이 다 들어 있다. 그러나 남자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이 여전히 단순한 항복을 의미하는 것인지 결코 하려들지를 않는다. 어릴적 전쟁놀이에서 최후의 패배자로 항복을 외치듯 최후 순간에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로 쓰려고 아껴두는 것인가.
'미안하오. 여보, 나 먼저 가서...'
위의 바램들이 남편에게는 소박한 것이 아니라 무리한 요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