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나이 먹는다는 것
직장에서 만난 사람중에 특이한 분이 계시다. 타 부서의 계장님인데, 몸도 다소 외소하지만 말을 많이 더듬으시고 목소리도 작고 소심한 느낌을 풍긴다. 그런데 지난번 그 부서 직원과 업무 협조차 전화를 했더니 계장님이 받으신다. 직원이 오면 통화하겠다고 했더니, 얘기를 하란다. 아주 간단한 서류를 복사하여 주라는 내용이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곧 바로 계장님이 그것도 별관에 근무하여 번거로운데 직접 서류를 들고 갖다 주고 가신다. 직원과 통화 했어도 우리가 가지러 갈 서류인데 직접 들고 오신 것이다.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고, 몸둘 바를 몰라했었다.
어떤 이들은 저 계장님을 보고 '참 바보네' 하고 무심히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생각할 여지를 남긴 사건이다. 왜냐하면 나는 최근에 문득문득 '내 나이가 지금 이런데, 나는 내 나이답게 행동하는가'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어릴때를 떠올려 보면 그때 지금의 내 나이되는 어른들을 어떤 눈으로 봤는지 생각이 나며, 분명한건 지금 내 모습보다는 훨씬 성숙했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평균적으로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높은데도, 늘 나보다 나이가 많겠거니 생각을 하고 대하곤 했다. 물론 나보다 나이든 사람들을 대할때 겸손하고 공손하게 대하게 되기도 하며 또한 나이어린 사람들에게 공손과 겸손으로 대하는것 또한 좋은 모습이지만, 상대방이 '저 사람은 참 이상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우리는 하나로 이어진 길을 바쁘게 혹은 생각없이 지나온 듯하다. 가끔 경계선 없이 지나온 이 길에 강 건너 버려두고 와야할 것들도 여전히 따라와서 불쑥불쑥 스스로도 당황할 어린 아이같은 모습을 만나게된다.
우리는 사춘기도 거치고, 스무살 성인식을 치르기도 했다. 사춘기야 일방적으로 당하는 몸과 마음의 변화이지만, 성인식은 의도적으로 치르는 의식일 터. 내 나이 스물에는 사춘기보다 더한 고뇌에 허덕이느라, 어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허영이었고, 성인식에 대한 생각도 없이 지나왔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성인식이라는 것 별스럽게(?) 치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건 마치 아이와 어른 사이에 큰 강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것이 스무살 생일에 치뤄지든, 성년의 날에 치뤄지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의식을 치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자신을 어른으로 인식한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이답게 사는 것 , 어른스럽다는 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무의식적인 행동 속에서 이기적이고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 새어나온다. 자신이 스스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위한 노력으로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에도 한번더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기를 반복하는 중에 우리는 훨씬 나이다운 자신으로 만들어져 갈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이답게 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은 물론일 것이다.
우리의 생각의 길목에 세워놓은 '나이답게, 성숙하게.'라는 파수꾼은 의외로 굉장히 효과가 있음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