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시골 중학생의 글<어미 염소의 모정>
며칠 동안은 따뜻하더니 오늘 갑자기 날씨가 굉장히 차가왔다.
이젠 완연히 봄이라면서 기뻐하던 우리에게 그것은 커다란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방에만 들어 앉아 있었다.
저녁때가 되었을때 아버지께서 염소집에가서 물주고 문닫고 오라고 했다. 귀찮았지만 할 수 없었다. 목도리, 장갑, 파카등으로 몸을 감싸고 동생과 같이 염소집으로 갔다. 염소집에 들어서서 염소를 헤아려 보니 일곱마리 뿐이었다. 그것도 새끼를 벤 어미 염소가 없었다. 그 염소는 며칠전부터 새끼를 낳을거라며 끈을 목에 묶어서 집에 놓아두었는데 아침에 너무 울어서 놓아준 염소이다.
동생과 나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 넓은 산을 죄다 뒤져봐야했다. 동생은 밑에서 찾고 난 산위에서 찾기로 했다. 온 산을 돌아다니려니까 나무가 다리에 와서 박고 가시가 얼굴을 마구 때렸다.
"오로로로"
하면서 염소를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포기를 하며 내려가기 전에 염소를 한번만 더 불러 보았더니 저쪽 산에서
"음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신없이 그쪽으로 갔다. 산이 너무 가팔라서 그냥 미끄럼 타듯이 내려갔다.
그런데 소리난 쪽으로 가봐도 염소는 간 곳이 없고 빛깔이 검어진 소나무만이 내마음을 슬프게 했다.
"언니야 집으로 가자"
동생이 못참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래"
나도 포기를 했다.
동생과 집으로 향하는데 저쪽에서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는 가까이 오시더니
"여자가 씰데없이 군소리 해쌌노. 이 염소집 몽땅 불태웠부래야 될따"
하시며 성냥갑에서 성냥 한개피를 꺼내셨다.
엄마와 다투신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벌써 염소가 죽은 것이 다섯 마리는 더 되었다. 나도 그동안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을 원망했는지 모른다.(그땐 우리 가족이 교회에 다니기 전이었다)
"아부지"
하면서 나는 얼른 성냥통을 빼앗았다.
"염소는 키워서 뭐하노 재수없는 것"
하면서 아버지는 좀 누그러지시는 것 같았다.
동생과 난 집으로 가서 엄마한테 염소가 없다고 했더니
"저녁은 다 됐으이 니가 채려라"
하시며 나가셨다. 이 어두운데 어떻게 염소를 찾겠다고 그러시는지 아무튼 엄마는 나가셨다.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까 엄마가 나를 부르셨다.
"숙아. 이따가 내하고 아까 염소가 소리 났다고 하든데 가보자"
난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오늘은 달도 없고, 빛도 발하지 못하는 별들만이 온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후레쉬를 들고 나가려고 하니까
"후라시는 뭐하러 들고 나가노. 염소만 죽으면 됐지 사람까지 죽을라고. 정신이 있나 없나?"
하시며 아버지께서는 호통을 치신다. 그러나 나는 막무가내로 내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엄마와 난 그 캄캄한 밤을 후레쉬 빛만으로 산으로 향했다. 밤이면 마루에도 못나가는 내가 이젠 두려움이란 어떤것인가 조차 잊어버렸고 그 추운 날씨에도 이마엔 어느덧 땀이 맺혀 있었다. 산 중턱에 올라섰을땐 산 밑이 아무것도 없이 검은 천을 덮어 놓은 것 같았다. 오늘따라 빛도 줄 수 없는 별들이 유난히 초라해 보였다. 발에는 가시가 박혔는지 따끔한게 괴로웠다. 그러나 하느님도 무심하신지 끝내 염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와 난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난 잠이 들었다. 동생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었을땐 벌써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제 산에서 헤맨 탓인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아침을 먹고나서 엄마와 아버지는 다시 염소를 찾으로 갔다. 얼마후 나도 찾으러 갔다. 이번엔 어제 가지 않은 쪽으로 올라갔다. 헛수고라는 생각만이 자꾸 내머리를 맴돌았다.
'새끼를 낳다가 죽었을까. 아니면 새끼를 낳기전에 끈에 감겨 죽지나 않았을까.'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저쪽에서 엄마 목소리와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매~"
갓난 새끼염소 목소리 같은 작은 소리가 들릴듯 말듯 했다. 나는 얼른 그쪽으로 달려 갔다. 엄마는 새끼 염소를 안고 있고 아버지는 어미 염소를 끌고 있었다. 어미 염소는 배가 고파서인지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동안의 수고는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서 꼭 필요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나도 후회스럽지가 않았다. 다리도 거뜬했다. 새끼 염소는 너무 귀여웠다. 아버지와 엄마는 화해가 되신 것 같았다.
"어제 새끼를 낳은 것 같애"
하시는 엄마 말씀에 '그렇게 차가운 날씨에 어미 염소는 새끼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그렇게 고픈데도 새끼 염소를 위해 젖을 먹여 새끼 염소는 거뜬했다. 하찮게만 보였던 그 염소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커보였다. 사랑이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임은 틀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