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타령
고등학교 1학년인 큰 딸은 고구마를 무척 좋아한다. 지난 가을에 친척이 보내준 호박 고구마 한 박스와 교회 성도가 주신 욕지도 타박 고구마 한 박스로 고구마가 풍부하던때가 있었다. 매일 한 냄비씩 고구마를 삶아 간식을 대용하던 때 큰 딸이 한 기이한 한 마디는 아직도 우리 가족에게 회자되는 유행어가 되고 있다.
"엄마, 고구마 다 먹으면 난 어떻게 살아."
아무리 고구마를 좋아한다지만 고구마 두 박스 창고에 쌓아두고 그런 앞뒤 논리 맞지 않는 말을 하여 가족들에게 폭소를 터트리게 하였으니, 아무튼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웬만하면 고구마는 큰 딸에게 양보하는 무언의 약속을 이행하게 되었다.
하루라도 고구마를 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힐 것 같은 큰 딸의 고구마 편력으로 늘 풍부할 것 같던 고구마도 일찌감치 동이나고 말았다. 매일 간식에 오르던 고구마도 이틀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두어번으로 줄어들고 큰 딸의 그 밝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아랫집 슈퍼에 고구마가 귀하신 가격으로 판매대에 올라와 있으면 거부하지 못하고 사들고 오는데도 말이다.
고구마를 간절히 원하는 큰 딸의 그 애틋한 마음을 안타까이 여겨 어느날 거금(?)을 들여 인터넷으로 그 이름도 유명한 해남 황토 호박고구마를 주문하였다. 주문하는 날 큰 딸에게 얘기하였고, 그 의도는 곧 고구마가 도착하니 염려하지 말고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라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딸은 그날 이후로 매일 집에 도착하면 첫 인사가
"엄마. 고구마 왔나?" 였다.
그렇게 큰 딸의 짝사랑을 한 몸에 받던 해남 황토 호박고구마는 사나흘을 기다려 도착하였고, 그 날 딸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고구마가 익고 있었다. 집안 가득 고구마 익는 냄새 사이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딸의 표정이 얼마나 밝든지, 남편이
"딸래미 얼굴 봤나?" 그런다.
지금 큰 딸은 오븐에 구운 해남 황토 고구마를 간식으로 거뜬히 해치우고 행복하게 오수를 즐기고 있다. 딸의 행복이 이 엄마의 행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