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책읽기

문화와 경제의 맛있는 레시피「딜리셔스 샌드위치」

안동꿈 2011. 1. 25. 23:40

나에게 있어서 경제는 경박한 시녀였고, 문화는 고고한 공주였다. 경제는 문화를 받쳐주어야 했고 문화는 홀로 고고할 뿐 경제를 돌아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나의 이 시대 착오적인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일간지 경제부 기자가 쓴 경제관련 서적.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지만 두 달 가까이 읽히지 못한 채 굴러다닌 이유였다. 그러나 책을 펼쳐서 이틀만에 읽어 치웠으니, 나처럼 경제에 문외한에게도 충분히 매력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는 뉴욕이 왜 세계 문화와 경제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아주 명쾌하게 이야기 한다. 세계 최고의 부를 가진 뉴욕이 잭슨 폴록이라는 추상화가의 등장으로 세계 예술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게 됨으로서 그저 돈만 많은 무미건조한 도시에서 예술이 살아 숨쉬는 매력있는 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여기에서 주목할 일은 잭슨 폴록이라는 일개 화가의 예술혼에 사로잡힌 독특한 예술활동만으로 이 모든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클레멘트 그린버그 같은 평론가의 노력과, 미국 정부까지도 뉴욕을 문화 중심지로 키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밀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예술과 돈이 문화와 경제가 어떻게 뒤엉켜 뉴욕을 먹여살리고 있는지 그 실타래를 풀어가고 있다. 맨해튼 남쪽 소호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보잘것없는 공장지대로 임대료가 저렴했기때문에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장으로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가 갤러리들이 들어서고 부자동네의 갤러리들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는 현대미술의 중심 역할을 한다. 기름때묻은 공장은 예술공간으로 바뀌었고 자연히 임대료가 비싸져 예술가들은 이곳을 떠나게 된다. 그들은 지저분한 우범지대같은 곳을 찾아 예술의 둥지를 틀지만 그곳을 화려한 문화의 중심지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돈을 밝히는' 도시답게 삭막하고 온통 회색빛이다. 그래도 뉴욕의 껍데기 안에 있는 뉴욕 문화의 정체성과 뉴욕의 라이프스타일을 확인하고 즐기러 천릿길을 마다 않고 날아오는 여행객이 매년 맨해튼 인구의 2.7배에 달하는 400만명이나 된다. 자기가 사는 도시의 공원은 안 가도 센트럴파크는 꼭 한 번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타벅스에 대해 뉴욕의 문화상징이 상업성으로 채워지고 있는 데 대해 광분하는뉴욕타임스의 태도는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스타벅스가 판 것은 그냥 커피가 아니라 '맛과 낭만'이었고, 고객들이 스타벅스를 사랑한 이유 또한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커피 문화를 소개한 건 슐츠 회장이었는지 몰라도, '스타벅스문화'를 만든건 고객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때문에 문화가 농락당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도록 버려두지 않는 이 뉴욕타임스가 있기 때문에 뉴욕은 그 가치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샌드위치 세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세대를 보면 늘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으면 저 자리에 올라가지도 못했을 사람이 세상 잘 만나서!' 그러다 뒷세대를 보면 열등감이 느껴진다. 영어 잘하고, 똑부러지고, IT에도 능숙하고, 시대흐름도 더 잘 읽는 것 같다. 내 책상이 언제 치워질지 불안하다. 이렇게 모든 세대가 아래위로 납작 눌려진, 샌드위치 속 시든 양상추 같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시든 양상추 속 같은 샌드위치가 딜리셔스 해지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문화적 세대차이를 없애야 한다.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나 접하는 사람이나 우리나라는 '문화'라는 말이 나오면 '나이'라는 색깔부터 먼저 규명하는데,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문화를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세대간 문화의 동맥경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공연에 함께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문화경쟁력을 키울 수 있게된다.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철학은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식이 자라서 월급 꼬박꼬박 받고, 경쟁도 덜하고, 밥그릇도 탄탄하면서, 사회적으로 체면도 유지되는 직업을 가졌으면 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성공을 보장하던 지식노동이 이제 단순노동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벽돌 나르고 몸으로 때우는 단순노동에 사무직이 포함되었다는 얘기이다. 스스로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인 일을 자신이 정한 시간에 몰입해 하고, 주어진 업무가 아닌 스스로 무엇인가 아이디어를 내 직접 만들고, 결과물을 평가받고 싶어한다. 

 

작가는 또한 컬쳐비즈시대에 글쓰기는 필수라고 조언한다. 글을 쓰지 않으면 자기 분야에서 돋보일 수 없다. 예로 나훈아가 남진보다 그 생명이 긴건 그가 싱어송라이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차범근이 여느 축구감독과 차별화되는건 그의 글 때문이다. 

 

글이란 생각이 정리됐기 때문에 쓰는 경우도 있지만, 글을 쓰기 때문에 생각이 정리되는 경우가 더 많다. 생각을 더 명확하게 한다. PC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 정리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 중에 미흡한 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탄로가 나고 그 부분을 메우면서 생각도 글도 체계가 잡힌다.

 

글쓰기를 일상적인 도구로 활용하게 되면,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정신능력의 두 배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코드 세 가지를 이렇게 얘기한다.

단순한 메시지. 강호동이 글을 썼다면 얼마나 잘 썼을까 생각해본다. 강호동은 청첩장에 "10대 때 샅바, 20대 때 마이크, 30대 이제 한 여자의 손을 잡고 사랑의 맹세를 하려 합니다. 사랑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강호동 장가갑니다."

경제적 배열.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했다. '완성이란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더 떼어낼 것이 없을 때 오는 것' 글을 쓰고 났을 때 짚어봐야 할 것은 '뭐, 빠진 게 없나'가 아니라 '빼도 상관없는 단락이 없나'라는 얘기다.

마음을 두드려라. 많은 경우 가장 차분하고 논리적인 글이 가장 감동적이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읽는 사람의 정서에 가장 잘 와닿도록 쓰자는 것이다. 기자들은 항상 중학생 입장에서 기사를 쓰도록 훈련받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중학생들이 봐도 이해가 되도록.

 

이 독후감도 작가의 글쓰기 코드에 비추어 볼때 손 델 부분이 무지하게 많다. 그러나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기로 하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