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강가 단상

어느 택시 기사가 들려준 요즘 남자 이야기

안동꿈 2011. 5. 12. 19:20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택시를 타게 되었다. 다들 대동소이하겠지만, 나는 택시 기사님이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없는 듯이 목적지까지 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 택시 기사님은 유독 말씀을 많이 하셨다.

“손님, 우산 안 가져가십니까? 오늘 퇴근 때쯤에는 비가 올 텐데요.”

“네. 가방에 넣어갑니다.”


그리곤 휴일동안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단다. 맞벌이 하는 아내를 비롯하여 식구들이 깰까봐 차를 몰고 좀 떨어진 곳에 나가서 직접 깨끗이 세차를 하고 왔다고 한다.  돌아와 보니, 밤 늦게까지 일하는 아들 트럭이 세워져 있었고, 아들이 피곤할까봐 그것도 깨끗이 세차를 해주었다고 한다.

 

차 두대를 모두 세차하고 나니 오후가 되었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아내와 운동을 하고 돌아왔더니 모처럼의 휴일이 훌쩍 지났더란다. 저녁을 먹고 나니 아내와 장모님은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 있고, 늘 설겆이 통에 그릇이 쌓인 채로 두고 못보는 자신은 설겆이를 했다고 한다.

설겆이를 하면서 '만약 자기 아들이 설겆이를 하고 있고, 며느리는 TV를 보고 있으면 그냥 두고 볼 어머니가 과연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기사님은 연배가 좀 되신 것 같은데(얼핏봐도 오십대 후반은 되신 것 같았음) 어쩜 요즘 젊은 세대들처럼 가정 일을 많이 도와주시네요."

하며 한마디 덧붙였더니,

 

요즘 가족들의 식사를 아내보다 자신이 더 많이 챙긴다고 한다. 그 계기는 IMF때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택시기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쯤 아내도 맞벌이를 시작했다고... 어느날 등산을 갔다가 근처 음식점에서 먹은 순대볶음이 하도 맛이 있어서 아주머니께 그 요리법을 배우고 나서 집에서 실습을 한번 했고, 온 식구들의 호응이 무척 좋았더란다. 그 재미에 요리를 한가지 두가지 늘였는데, 아내가 해주는 음식과는 비교가 안되게 맛이 있고, 아이들은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아빠가 해주는 음식을 훨씬 좋아한다고 한다.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셨네요. 직접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즐겁게 먹어주니 그보다 기쁜일이 없죠?" 했더니

"맞아요. 그때가 가장 행복하죠"

 

그런데 분주한 아침시간에 처음보는 손님에게 쉴새없이 하소연을 털어놓는걸 보면, 그 마음에 고여있는 다 내어놓지 못한 무거운 무언가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권위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