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시부모님께 전화하려면 오늘의 할 일에 적어야 한다.

안동꿈 2011. 11. 11. 09:00

아침에 일찍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A4용지 이면지를 반 잘라서 집게로 집은 내가 즐겨 사용하는 메모지에 오늘의 할 일을 적는 것이다. 거기엔 여러 건조한 업무들이 나열된다. 그 가운데 나름대로 보드라운 항목이 자리할 때도 있는데 '부모님께 전화드리기'이다.

 

오전이 지나가고 점심때가 다가올 즈음이면 몇 가지 일들이 빨간펜으로 줄이 그어지는 기분 좋은 일이 진행이 된다. 그런데 이 '부모님께 전화드리기'는 마지막 줄에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미뤄진다. 그 부분은 징검다리처럼 건너뛰고 뒤에 항목들이 줄이 그어지고 어느덧 시계 바늘이 여섯시를 얼마 남겨놓지 않을 때쯤 화들짝 놀라며 그제서야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평소 전화를 자주 드리지 않는 나를 부모님은 과분하게 반가워하시고 고마워하신다. 나는 한결같은 레퍼토리 ' 별일 없으세요?, 건강은 어떠세요?' 라고 얘기할 뿐인데, 아버님은 그간 근황과 기분 등 줄줄 얘기하신다. 가끔 '이렇게 얘기 길게해도 괜찮냐' 라고 하시면서... 어머님은 아버님이 평소 말씀이 많으시니 하실 말씀이 있으셔도 간단하게 하실 말씀만 하고 아버님께 넘겨주시는 것이다.

 

내겐 친정부모님이 오래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결혼 후 친정부모님께 전화드리는 마음을 정확하게 느낄 수는 없지만 아마 업무시간중에라도 문득문득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생각나면 얼른 나가 전화 한통 올려드리고 오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처럼 오늘의 할 일에 적어야만 생각나고 그것도 미루다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때 전화 드리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