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입이 너무나 무거운 우리 첫째 딸

안동꿈 2009. 7. 6. 23:39

   2주전에 할아버지댁이 이사를 가셨는데 시험공부한다고 혼자두고 우리끼리 다녀오면서, 중학생 시험공부 거뭐 대단하다고 할아버지 이사한 곳도 와보지 않는다고 속으로 아들네 못마땅해 하시지 않을까 며느리로서 염려도 되었었다.

 

  딸내미는 시험치고 가면 되지 않느냐고 고집을 부리니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어 시험마치는 토요일은 꼭 할아버지댁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토요일 기말고사 마치고 친구들과 곧장 '여고괴담' 보러간 큰 딸. 

  딸내미 오기를 눈빠지게 기다렸다가 오는길에 태워서 할아버지댁에 갔다. 한번 첫손주는 영원한 첫손주. 부모님은 중3인 딸내미한테 아직도 끌어안고 뽀뽀를 하신다.

 

  9시가 훨씬 넘어 집에 왔는데 집에 오자마자 딸내미, 자기방에 들어가더니 한참을 있다가 나온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학교에서 받은 답안지로 점수를 매긴것 같다. 자기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살짝 미소가 스친다. 잠자리에 누웠을때 살짜기 시험지 매겨보았냐고 물어도 안매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 엄마 시험치고 나니까 무슨 선물을 받은 느낌이야." 

  " 그래, 어려운 일을 한가지 끝내고나면 이전의 그 평범한 시간인데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지."

  그래도 궁금하여 눈치를 보며 한번 더 물으니

  " 엄마, 그냥 실망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한다. 나참 명색이 엄마인데 너무 무시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오늘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을 기다려 집에 돌아왔는지 확인하는척 전화를 하면서

  " 너 시험점수 나왔지? 엄마한테 가르쳐주라" 사정을 했다.

  " 엄마 나 잘 나왔어, 평균 98.2점이야"

 

  무슨 큰 기밀사항이라도 된다고. 그저께 자기방에서 시험지를 매겼고 그것보다 0.2점이 높게 나왔단다. 동생한테는 점수를 가르쳐주고 엄마아빠한테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약속까지 했단다. 엄마아빠 앞에서 그렇게 자존심을 세우고 싶을까? 

 

  엄마아빠에게 기다리게 했다가 기쁘게 해주려고 그러는건지, 엄마아빠와 거리가 있어서 그런건지, 16년을 같이 살아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큰 딸내미 시험친다고 수고했고, 앞으로 좀더 친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