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남편 출장시 아내들은 전사가 된다

안동꿈 2012. 3. 1. 13:59

남편이 1박2일로 서울 다니러 갔다.

남편이 있든없든 아내의 할 일은 변함이 없는 것 같은데, 남편이 없는 날 나는 뭔가 다르다. 우선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뉘어졌던 마음을 아이들에게 오롯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굳이 이유를 댈 수 있겠다.

 

작은 딸과 저녁을 먹은후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하여 큰 딸의 신발, 책, 작은 딸의 간식 등을 챙길 요량으로 차가운 한겨울 저녁 바람을 뚫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일단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면 나가는걸 싫어하여 남편이 차를 태워준데도 잘 나가지 않는데,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마트로 향한 것이다.

 

마트에서 작정한 것과 작정하지 않은 것까지 몇가지를 더 사서 끙끙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에 10% 적립해주는 서점에 들러 며칠전부터 주문해주라던 큰 딸의 책도 3권 샀다.

 

장 본 것과 책까지 보탰더니 엄청나게 무거웠다. 버스 두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집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 뜸한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을 한다. 

 

남편과 함께 있으면 몸도 마음도 느슨해지는 걸 느낀다. 저녁을 먹고나서 해야할 집안 일들도 좀 미뤄놓고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남편이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고, 남편의 그늘안에서 몸도 마음도 놓아버려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없는 날이면 몸과 마음을 일단 다잡고 준비태세를 갖춘다. 그리고 평소에는 안하던 일들까지 챙기게 된다. 평소 몸의 편안함을 먼저 챙기던 것을 가족들을 위해서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각오로 덤벼드니 고상한 움직임은 사라지고 여전사로 돌변하는 것이다. 무거운 장 보따리를 들고 버스비까지 아껴가면서 고통을 감내해야 자식들을 위해서 뭔가를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한 것이다. 이 부분은 뭔가 위험한 발상이긴 한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면 남편이 있으나 없으나 한결같은 여전사들이 많은 걸 본다. 철없는 남편까지 자식 범주에 집어넣고 모든 것을 지휘하며 통솔하는 여전사들 말이다. 대한민국의 어머니, 아내들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