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강가 단상

버스정류소에 낯선 눈길로 서있는 친구를 보았다.

안동꿈 2012. 4. 3. 08:45

친구를 만난 것이 대학 신입생때였으니 어언 이십년을 훌쩍 넘긴 지기다.

이십대에 만난 친구들은 마흔이 넘어도 그 만남에는 늘 이십대가 있다. 조금씩 변해왔을지 모르지만 그때 그 이십대로 지금도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친구는 늘 나보다 고급스런 취향을 가졌었다. 가령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마셔도 친구는 늘 설탕없는 프림커피였고 난 설탕이 듬뿍 든 밀크커피였다. 내가 김범룡을 좋아할때 그는 이문세 음반을 빠짐없이 사모았고 그 궁핍한 시절에도 콘서트를 찾아 다녔다. 

 

나는 늘 이상을 좇았고 그는 다소 현실주의자였다. 내가 나의 논리에 취해 변론을 쏟나아놓을 때 그 친구는 우스갯 소리로 무시해버리곤 했다. 

 

내가 수시로 변하는 짝사랑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는 빠짐없이 들어줄 뿐 의견을 내 놓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빨리 그를 떠났다. 나는 대학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지 1년여 만에 시집을 갔고 그 친구는 여전히 혼자다.

 

오늘 출근길, 최근에 근무지가 옮겨져 양산으로 출근해야하는 친구가 낯선 표정으로, 낯선 사람들과 함께 버스정류소에 서 있는걸 보았다. 버스 안에서 아는체 하려고 해도 멍하니 서있는 그의 눈길을 잡을 수는 없었다.

 

함께 있을땐 늘 이십대였는데, 홀로 서있는 낯선 눈길의 친구는 그저 마흔 중반의 초라한 중년일 뿐이었다.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고된 하루가 어깨에 실려 있었고, 얼굴엔 하루의 염려들이 배어 있었다. 그의 모습에서 또한 내 모습을 보았다. 몹시 측은해 보였고, 세월은 우리를 지나 저만치 가고 있었고, 그 세월은 변하여 다른 이들과 즐거워하고 있을뿐 우리를 돌아보지는 않는 듯 했다.

 

그 낯선 표정과 초라한 친구의 모습이 종일 눈에 밟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