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불만 전화
오후 4시쯤 잘 풀리지 않는 업무로 고민중에 있는데 휴대폰으로 걸려온 아버님의 전화는 16여년 결혼생활중 이미 단련된 아버님이지만 여전히 내겐 혼란스러웠다.
시부모님은 지난 6월 17일자로 이전에 살던 아파트를 팔고 인근 신도시 주공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셨다. 나이 일흔중반의 아버님께서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아파트를 팔아 막내딸 시집보낼 자금도 마련하시고, 남은 여생 궁색하지 않게 용돈도 넉넉히 가지고 생활하시고 싶다고 그 용단을 내리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날아온 재산세 고지서가 아버님을 몹시 화나게 하셨나보다.
아버님은 전화로 대뜸
"아부지다. 6월 17일 예전 아파트를 등기이전하고 무주택이라야 들어가는 주공임대아파트로 이사온거 너고 알끼다. 그런데 7월 재산세 고지서가 왜 우리 앞으로 나왔냐? 니가 한번 알아보거라"
" 예, 아버님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재산세는 6월 1일을 기준으로 주택 소유자에게 재산세가 나가는 걸로 압니다."
"그런게 어디 있어? 그건 니가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법이 공평해야지. 그럼 우리집을 산 사람은 재산세도 안내고 살고, 우리는 이미 판 주택의 재산세를 낸단 말이냐? 자세히 알아봐라. 해결이 안되면 인터넷으로 올릴끼다"
단단히 화가나신 아버님께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그대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 재산세 담당자에게 자세히 알아보겠다고 말씀 드린후 전화를 끊었다.
세무과 재산세 담당자에게 찾아가서 아버님의 상황을 얘기하고 자문을 구하니 억울할만도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단다. 어떤 사람은 그 시기에 판집과 산집의 두 재산세를 다 내는 사람도 있고 둘다 내지 않는 사람도 있단다. 재산세 납기기간이라 얘기하는 도중에도 문의 전화가 끝없이 걸려와서 담당자는 몹시 힘들어 보였다.
아버님께 담당자에게서 상세히 알아본 사항을 말씀 드렸지만, 고지서에 적힌대로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도 통화를 할 수 없느냐, 아무리 법대로 한다고 해도 법은 공정해야 하는데 이럴 수는 없다, 니가 열심히 설명은 하는데 나는 백프로 이해를 할 수는 없다. 등등등... 그러나 내가 구청에 뭐라 못한다. 니가 거기 있으니 그럴 수도 없다. 그런데 너무 신경쓰지는 마라...
대화가 안되는 고질 민원처럼 진땀을 쏙 빼놓으시고는 신경쓰지 말라며 전화를 끊으신다. 불같으신 성격이시며, 당신이 어느정도 수긍이 가야 체념하시고 그런 후에는 깨끗이 승복하신다. 어머님은 그 긴 세월동안 늘 참으시고 아마 지금도 며느리 일 바쁠텐데 전화건다고 옆에서 안절부절하시고 계실것이 눈에 선하다.
아버님은 예순이 넘으셔서 운전면허를 따시고 운전을 해오셨는데 지금도 남편보다 더 터프하게 운전하신다. 또한 은퇴하신지는 7, 8년 정도 되는데 그때부터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시며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시며 모든 기성 생활용품들을 당신이 쓰시기에 편리하게 창조적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시는 특기를 가지고 계신다. 사람들과 만나면 하나뿐인 며느리 착하다고(?) 칭찬하기를 빼먹지 않으신단다.
그래도 행정에 대한 불만을 며느리에게 이렇게 퍼부으시면 난 어떡하라고요...
퇴근길 직장동료와 얘기하던중 자신도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단다. 옆집에 사는 사람은 땅도 훨씬 많은데 연금을 더 많이 받길래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따졌더니 딱딱하게 규정만 얘기하더라며 단단히 화가나셔서 아들에게 불만을 얘기하시고 아들보고는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하시더란다.
아들과 며느리도 못 미더워 언성을 높이는 상황인데 불평을 쏟아내며 언성 높이는 민원들 때문에 속상해 하지말자. 우리는 모든 불만 민원들을 부모님인양 생각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기다려주자고 잠깐이나마 결론을 내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