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고3을 둔 가족들의 고통분담 이야기

안동꿈 2012. 8. 4. 14:56

아이가 고3이 되기전에는 고3 부모가 되면 할 일이 많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딸이 고3이 되고보니, 엄마의 역할이 별로 없었다. 아니, 내가 제대로 해야 할 일을 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딸이 고3 이전이나 지금이나 엄마로서 나의 할 일은 동일하다.

 

그러나 가족 전체적으로 볼 때 딸이 고 3 이전과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텔레비젼을 차단한 것이다.

'바보상자' 라고...텔레비젼 입장에서 가장 모독적인 명칭을 비롯하여 온갖 음해로 공격을 당하고 있는 텔레비젼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유익한 면도 많이 있음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9시 뉴스 청취 십 여분이면 평소 세상사 관심없어도 일상 대화에서 정치,사회분야의 평균 지식인 정도는 된다. 그리고 온갖 시름들이 마음을 누르고 있어도 개그맨들의 한바탕 재롱에 맑게 웃을 수도 있다.

중학생인 동생은 인기있는오락프로를 시청못하고 가면 친구들과 대화단절이라고 울상을 짓기도 한다.

 

그런데 이 텔레비젼 선을 끊은 결정적인 이유는, 집에 돌아온 이 고 3 딸이 소파에 앉아 잠시 간식을 먹으며 텔레비젼을 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텔레비젼이라는게 저혼자 주도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딸의 간식 시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간식을 다 먹어도 재미있는 내용은 계속되고 오히려 이야기가 무르익으니 더 재미가 있어 간식을 먹는다는 주 목적은 사라지고 진행중이던 프로를 다 마무리 짓고서야 일어난다는 것이다.

누군들 그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가장 불쌍한 대한민국의 고3.

그 텔레비젼의 유혹에서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우리도 함께 고통분담하기로 하며 텔레비젼을 차단하기에 이른 것이다.

 

두 번째는 동생의 스마트폰 구입과 관련한 것이다.

학교 친한 친구들이 모두 스마트폰으로 교체를 했다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폰 요금과 차이도 거의 없으니 스마트폰을 사주기를 때론 아양으로, 때론 협박으로 엄청난 강도로 조르고 있다.

그 요구가 얼마나 간절한지 밤낮이 따로 없다. 그런데 지금 스마트폰을 산다면 가족중에 혼자 일반 폰인 언니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동생을 설득한다.

큰 딸은 스마트폰 바꿔준데도 싫다고는 하지만 옆에서 동생이 스마트폰으로 요란을 떨면 분명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고, 구입 시기를 좀 더 뒤로 미루자고 동생을 설득하고 있다.

이 건은 아직 협상중이라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는 일이다.

동생이 참고 기다려 준다면 우리 가족중에

고3 언니를 둔 동생으로서 나눠가지는 고통분담중에서 가장 많은 고통을 담당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세 번째는 밤 12시 가까운 시간에 학교로 딸을 데리러 가야하는 아빠의 고통분담이다.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야하는 사람이 12시 밤거리를 운전하며 다니는 것이야말로 철인의 일과가 아니겠는가.

"내가 운전할 수 있으면 오늘 밤엔 내가 가줄텐데..."

운전면허도 없는 나는 아무 영양가 없는 빈말로 위로하곤 하지만, 그 아득하던 날들도 이제 100일도 안 남았으니 남의 일 아닌 우리 일도 세월이 빠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굳이 엄마의 고통분담을 들자면, 딸의 예민한 성질을 웬만하면 흡수해야 한다는 것.

딸이 잘하고 기대대로 해주어서가 아니라, 그저 고3이라는 그 무거운 짐이 그에게 얹어져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안쓰러워 웬만하면 참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고3뿐 아니라, 모든 부모들이 인내하며 자식을 키우는 걸 보면 엄마의 고통부담은 다소 약한 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