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를 칭찬하는 사람, 비판하는 사람
얼마전
나는 잘 모르는 직원에 대해 나와 잘 아는 동료가 그 직원을 좋지 않게 판단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에게 불편을 끼친 것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다.
얼마후 그 직원이 부서를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 있는 나와 잘 아는 또 다른 동료가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직원이 참 야무지고 친절하며 일도 잘 한다'고, 나이가 한참 어리니 '무척 귀엽다'고까지 하면서 칭찬을 한다.
그 직원이 비판받을 직원인지, 칭찬받을 직원인지 정확한 판단을 나는 할 수 없다. 아니, 우리가 생활하면서 누군들, 무슨 사건이든 정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제대로 다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재판관이라도 다 할 수 없는 일이 잖은가.
그러나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은 그 직원에 대해 얘기한 두 동료에 대한 것이다.
내 마음에 남아있는 이미지는 비판을 한 동료에 대한 것은 즐겁지 않은 것이고, 칭찬을 한 동료는 밝고 기분좋은 것이다.
직장생활하면서 동료를 비판할 일은 많아도 칭찬할 일은 참 드문 것 같다.
직장생활이 조직생활로서 서로 협력해야하는 구도이지만, 동시에 개개인은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료 면전에서는 칭찬을 하곤해도, 남들에게 동료를 칭찬하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다. 동료를 남들에게 칭찬함으로서 자신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길다면 긴 20년여년의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서서히 깨닫게 된 것은 남을 칭찬하는 것이 그 순간에는 상대방을 높여주고 그럼으로서 나는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 같고, 남을 비판하는 것이 그 사람은 잘못하고 나는 잘못이 없어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남의 칭찬에 인색하고 비판이 습관이 된 사람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담겨있는 그의 이미지는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나와 이야기 할때는 더없이 좋아보이고 내 편인 것 같지만 돌아서면 남에게도 나를 또 그와같이 신랄하게 비판할 것 같고 그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것이다. 결국 그와는 든든한 믿음의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다. 내가 아무리 바르게 행동해도 그 사람의 기분이나 마음에 안들면 비판의 대상이 될테니 관계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반면 남이 없는 곳에서 남을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은 객관적이고 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된다. 그와의 관계는 불안하지 않다. 그의 기분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에 따라 행할 때 그는 바르게 판단해 줄 것이기 때문에 관계가 불안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월이 쌓여 이런 지혜와 안목이 생겨도 순간적인 기분으로 쉽게 남을 판단하고 여전히 칭찬에는 인색한 모습으로 생활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아는걸 아주 조금만 실천할 수 있어도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