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도시락, 딸의 도시락
주5일수업제 시행이후 큰 딸은 토요일마다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간다.
딸의 도시락을 싸는 것은 30년전 고등학교 자취생활때 내 도시락 싸는 것 보다
훨씬 더 긴장된다.
그땐 반찬통에 반찬 한 가지 달랑 싸서 갔었다. 자취생이 여러가지 반찬을 만들 처지가 못 되었다. 반찬 한 가지만 싸가도 여러 친구들과 나눠 먹으니 골고루 먹게되는 것이다. 그땐 대여섯명이 같이 모여서 밥을 먹었는데 내 반찬이 제일 초라했다. 부끄럽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잖은가. 나는 다른 친구들의 맛있는 반찬을 먹는데 다른 친구들은 내 반찬을 안 먹었다.
가끔씩 내 딴에는 특별히 정성들여 도시락을 싸간 날도 있는데 그 날도 여전히 내 반찬은 인기가 없었다. 그러면 내 반찬이 불쌍해서 아니, 내가 불쌍하여 나라도 부지런히 먹어주곤 했다. 어쨌거나 그 시절 나는 점심시간 만큼은 꽤 인기없는 친구였다.
그 기억이 요즘 딸의 도시락 싸는 일에 많은 신경을 쓰는 이유일 수도 있다.
딸의 도시락은 최대한 쌀 수 있는 반찬 수가 3가지이다. 가능한한 반찬통 세 곳을 각각 다른 종류로 채워서 보낸다.
어느날 딸이
"엄마, 반찬 대충 싸줘도 돼. 친구들 중에 내가 반찬 제일 잘 싸와.
친구들은 자기꺼는 안 먹고 내꺼 자꾸 먹어..."
나는 그 소리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30년전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딸에게는 그때 나와 같은 서운함은 없겠다는 생각에 안심도 되었다.
요즘 신세대들의 사랑 폴폴나는 입 떡 벌어지는 화려한 도시락은 전혀 아니다. 또 그렇게 할 재주도 내게는 없다. 단지 소박하지만 딸의 식성을 아는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도시락 반찬을 싸줄 뿐이다. 거기에 모처럼 쉬는 토요일, 늦잠 잘 수 있는 유일한 날이지만 고걸 반납할 수 있는 작은 사랑만 챙겨 넣어줄 뿐이다.
그런데 내가 딸에게 도시락을 싸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겠는가. 비록 몇 번 안 되지만 딸의 학창시절 기억속에 엄마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게 된다면 그 보다 더 좋은 보상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