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작은 즐거움을 맛보고 싶으면 버스를 타라

안동꿈 2012. 9. 4. 07:30

"언니, 언니, 정말 신기해요.

제가 퇴근하면서 백화점에 들렀다가 집에가는 길인데 차비가 한번밖에 안들었어요."

직장 후배가 평생 분신처럼 달고 다니던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결정한 첫날이었다. 퇴근길에 걸려온 그의 전화는 무슨 신기한 발견을 한 듯 호들갑스러웠다.

 

" 요즘 버스 환승 잘 하면 괜히 돈 버는 기분이라니까.

나는 퇴근하다가 재래시장에 들러 시장까지 보고 환승해서 집에 가는걸.

그뿐인줄 아냐. 버스 정류소에 버스도착시간 알리는 전광판도 있어서 빨리 오는 차 골라탈 수도 있지. 도착시간 전광판이 없는 곳도 있어서 나는 스마트폰에 앱 설치해서 버스도착 시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버스 타지. 그러면 재미가 더 쏠쏠해."

 

후배는 무슨 딴 세상에 온 듯 황홀해 한다.

아마 예전에 버스 기다릴때 공상만 해보던 일들이 요즘 현실이 되어있으니, 오랜만에 버스 타는 사람들은 신기해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버스타는 데서 무척 행복을 느낀다.

 

버스를 타면 창 밖으로 비치는 계절의 변화를 넋놓고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특히 파란하늘, 한가로이 흩어져있는 구름들을 한참 쳐다보는 즐거움은

자가운전자들은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어제 못 보았던 담장밑 장미에 감격하여 그 감동을 잊기전에 트위트에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버스엔에서는 가능한 일...

 

그리고 버스를 타는 것은 차를 운전하는 것 보다 화낼 일이 적다.

앞차는 늘 답답하고, 뒷차는 늘 나를 못마땅해하고...

옆을 스치는 차도 즐거움을 주는 일은 없다.

도시에서 운전하는 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늘 마음을 긁히는 일...

 

나는 출근길 한가한 좌석버스 안에서 여러가지 일을 해 보았다.

샌드위치 먹어봤고, 립스틱 발라봤다.

책과 잠은 기본, 트위터 해봤고, 블로그 댓글도 달아봤고

양말도 신어봤고, 시간에 쫓기던 업무처리도 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버스타는 일의 즐거움은

분주한 일상에서 일정 시간만큼은 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쉬지만 버스는 열심히 움직여 나의 집, 나의 직장으로 데려다준다.

그 여유가 나는 좋다.

 

어쨌든 나는 버스타는 일을 무척 즐긴다.

후배도 이 즐거움을 알게 될까...

아니면 곧 불편함들이 느껴져 포기하게 될까.

좀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