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땅콩추억

안동꿈 2009. 5. 30. 10:31

 교회의 낡은 건물과 그 뒤로 끝없이 넓은 들판이 있었고 여섯살배기 소녀가 오빠와 함께 추수한 땅콩밭 여기저기 다니며 땅콩을 바가지에 주워 담고 있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바가지에 담긴 땅콩은 주머니에 넣고 바가지를 머리에 덮어쓰고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게 선명하게 남아있는 어린시절의 기억이다.

 

  그후로도 친구들이나 동생들과 땅콩을 거둬들인 밭에 땅콩을 주으러 자주 갔었고 땅콩을 바가지에 가득 주워서는 밭두렁에 앉아서 반쯤은 까먹고 집에 갖고 갔던 기억도 난다. 시골에서야 땅콩 농사를 직접 짓지 않고는 땅콩을 삶거나 볶아서 먹을 여유가 없었다. 그 어린시절 생땅콩을 먹은 기억이 요즘 나에게 이상한 버릇을 남겼다.

 

  매년 이맘때만 되면 갓 땅에서 캔 흙묻은 땅콩이 소쿠리에 담겨져서 가게마다 얼굴을 내민다. 그런데 선뜻 살만한 가격은 못된다.

 

  시장갈때 마다 두 아이를 업고 걸려서 조금이라도 싼곳을 찾아 가다보면 버스 두 정거장 되는 거리를 걸어가게 되고 지쳐 보채는 아이들에게¨조금만 참아라 이제 다왔다¨를 연발하며 한시간여 걸리는시장보기를 끝내는 짠돌이 주부인 나는 비싼 땅콩을 그것도 나를 위해 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매번 그 추억의 맛에 대한 유혹을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누가 그랬던가. 미각은 우리를 가장 강력하게 추억속에 되돌려 놓는다고 아닌게 아니라 땅콩을 생것 그대로 먹노라면 어린시절 고향의 흙냄새를 맡는 듯하다.

 

  땅콩 한줌으로 20년 너머에 있는 고향의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남편도 아이도 땅콩을 삶거나 볶아서는 먹어도 생것은 입도 못대겠다고 한다.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추억 운운하며 땅콩을 까먹는 아내와 엄마를 보는 그들의 눈이 왠지 낯설고 억울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할때가 있다.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자연과 동화되어 보내지 않고는 도저히 지난날을 아름답게 회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안다. 내 어머니의 배고픔을 이해 못했지만 20년여 동안 발효된 그 땅콩 맛을 그리워하듯이 내 아이들도 그들만의 문화가 있을 것이고 세월이 흘러가면 그것을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이 천덕스런 버릇과는 다른 좀 세련된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