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시댁 김장날 시아버지가 하신 일

안동꿈 2014. 12. 17. 07:00

토요일 아침 전화를 거신 시아버지는 작은 손녀에게 할 말이 있다고 바꿔 주라신다.  할아버지와 통화를 한 작은 딸이 들려준 진실은 할머니가 김장을 하는데 언니랑 와서 좀 도와주고 같이 온천하러 가자는 것이었고, 언니랑 둘다 시험기간이라 갈 수 없다고 얘기한 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상황에서 며느리의 선택은 오직 한가지 뿐이다.

 

시부모님은 아들네가 토요일은 주일 준비 하는 줄 아시기 때문에 토요일엔 아들과 며느리를 좀체로 찾지 않으신다. 또한 일주일 후면 교회 김장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며느리를 차마 부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혹시나 하여 손녀들을 조심스레 찾았는데 그것도 헛탕을 치고 만 것이다. 나는 아버님이 며느리에게 김장이야기를 둘러 알리려고 전화하신게 아니라는 걸 안다. 이십여년간 함께 생활해보면 그 정도는 안다.

 

나는 교회 일을 대충 끝내놓고, 몇가지 챙겨서 혼자 집을 나섰다. 그래도 간다는 말씀은 드려야겠기에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은 오지 말라고 하시고 나는 벌써 버스를 탔다고 둘러댔다.  

 

도착해보니 배추 스무포기를 다 씻어 건져 놓으시고 치대기만 하면 되도록 해 놓으셨다. 나는 복장을 갖추고 자리를 잡은 후 2시간여 만에 해치웠다.

아버님은 옆에서

'우리 며느리 손 빠르제... 딸들 시집가면 저거 알아서 해결해야지 시집간지가 언젠데 아직도 김장을 해주느냐' 딸들 흉인지, 어머님 흉인지 애매모호한 말씀을 하시고, 어머님은 옆에서 

'딸들은 저거 김치해 주는데 시간 없다고 오지도 않는다. 저거 얼굴 보기가 대통령 보기 보다 어렵다' 하시는데, 그저 빙그레 웃을 수 밖에.

'아빠는 왜 전화를 해서 바쁜 새언니 오게 만들었느냐.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딸들 변호도 잊지 않으신다.

 

별 것도 아닌 배추 스무포기 치대는 일, 여든의 부모님이야 태산 같은 일일터.

부모님의 미안함과 안쓰러움과 염려 섞인 추임새를 곁들여 후딱 해치우니 저녁 때다. 맛있는 저녁을 배달시켜 아들 불러 함께 먹이면서 아버님은 몇 번이나 말씀하신다.

"너거 엄마 혼자 했으면 오늘 밤새 해도 다 못한다. 올해 김장 반은 내가 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