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잘 만난다고 하는 것
오늘 후배와 만나 직장 친구 어머니 병문안을 다녀왔다. 일을 똑부러지게 하여 주요 부서만 다녔고 차가워 보이는 인상 탓에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기도 했었는데, 몇 년전 같은 부서에 근무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어릴 때부터 가진 신앙의 끈을 놓지는 않았지만 너무 많은 현실의 어려움으로 막연한 회의를 안고 지내고 있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어머니는 암과 여러 합병증으로 요양병원에 모신지 일년을 훌쩍 넘겼고, 최근에는 아버지마저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직장생활과 부모님 병수발까지 챙기려니 얼마나 고될까 싶다.
1년여 전 어머니 병수발을 위해 업무적으로 좀 여유있는 부서를 요청하여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승진에서 마저 탈락되어 힘든 하소연을 해 오기도 했다. 며칠전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때 '○○가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동안 풀어 놓지 못한 복을 마음껏 쏟아 부어주실 것 같은 확신이 든다'고 평소 그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나의 마음을 전했더니,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내가 괜한 말을 하여 자존심을 건드렸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는데, 한참만에 '밖에서 좀 울다가 왔다.'고 답을 한다. 마음이 아팠었다.
오랜만에 김장김치 좀 챙기고 빵도 좀 사서 후배와 만나 병원에 찾아갔더니, 어머니 옆에서 그 친구는 무척 밝았다.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정말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부지런히 그리고 분주히 이것저것 챙기는 모습이 생기가 넘쳐 보였다. 어머니 옆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그가 어머니 몸의 안좋은 부분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아주 소곤소곤 얘기하고, '건강하시다. 괜찮다.' 는 얘기는 크게 하곤했다. 그리고 간호사가 와서 체크를 할 때 '정상이죠, 괜찮죠?' 하며 어머니가 들을 수 있게 크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가 길어봐야 3개월을 못 넘기실 것 같다는 의사의 얘기를 우리도 알고 있는데, 정상적일 것도, 건강할 리도 없건만 그는 순간순간 어머니에게 최선의, 최고의 것을 주려고 했다.
또한 우리가 병문안을 간다고 할 때 늘 반갑게 받아들이는 것도 어머니를 위한 배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쉰이 다 되도록 외모도 능력도 빠지지 않는 자신의 딸이 외롭게 혼자 있는걸 안타까워 하고 있을 어머니를 위해 작으나마 친구들이 찾아와 외롭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했다. 길진 않겠지만 어머니에게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을 한없이 감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입을 통해 듣지는 못했지만 그의 모습에서 느끼고도 남았다.
누가 봐도 그의 삶을 보고 부모 잘못 만나 고생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과감히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조현아와 비교하는 것을 친구가 용서해 주길 바란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부모를 잘 만났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누가봐도 부모가 물려준 많는 재산과 좋은 지위로 풍족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인격이 거친 세상을 통해 다듬어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부모 잘못 만나서.
우리의 삶은 자신이 가진 인격과 성품으로 온 우주를 구성한다. 자신만의 인생의 우주를 구성하는 것이다. 우주가 아무리 크고 넓고 복잡해도 그가 가진 인격과 성품의 범위 안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일그러진 인격과 성품으로는 결코 온전한 생을 품을 수 없다. 우리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 업적을 남기기 위해 몸부림 친다.
인격, 성품 그끼짓 것 짓밟으며 목표물을 잡기 위해 앞으로 나간다. 그러나 우리의 업적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유유히 흐르는 저 강물 한 방울도, 우리가 무시하는 저 1초의 시간도, 지겹도록 쏟아지는 저 햇빛 한 조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온전한 인격과 성품이다. 우리를 만드신 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이 우주 안에서 누리기를 원하는 행복과 기쁨, 그리고 그것을 나누어주기를 원하는 것,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