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 이란 명찰을 달고 간 중국
밤새 내리는 굵은 빗줄기에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시작된 중국으로의 첫 여행. 그러나 상해행 비행기가 구름 위 고도로 올라섰을 때 찬란한 태양이 우리의 불안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1시간 50분의 비행 후 맞은 중국과의 첫 대면은 상해 포동국제공항이었고 그 규모와 현대적 시설은 적잖은 놀라움이었다.
짜장면, 탕수육... 정도 수준의 우리의 중국음식에 대한 이해는 첫 점심 식사때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고, 식사 때마다 고추장, 김치에 대한 향수병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의 음식의 특징은 기름기였다. 그 많은 기름진 음식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 중에는 비만이 없으며 그 이유는 녹차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의 녹차문화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건강과 여유로움의 상징으로 그들의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그들만의 문화. 수많은 서양의 문화들과 혼합된 우리의 모습과는 다른 그 무엇으로 다가왔다.
일정에 따라 상해 보타구청을 방문했다. 행정, 치안, 교류까지 관장하는 기관이라고 들은 만큼 청사가 매우 크고, 내부시설도 아주 깨끗하고 현대적으로 잘 지어져 있었다. 그 곳 국장님 등 공식적인 접대에 처음에는 다소 어색함이 있었지만, 기관장 선출방식, 세수확보방안, 전기와 수도공급방식, 사회복지대책 등 우리 각자의 업무와 연관된 질문들이 던져지고 또 답변을 들으면서 일정의 촉박함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중국 최고의 요리로 베푼 저녁 만찬의 환대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의사소통은 비록 통역에 의지해야 했지만, 맛난 음식은 만국 공통어로서의 역할 을 톡톡히 한 셈이다.
동방명주, 88빌딩 등 상해 중심부를 둘러보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발전된 대도시의 모습에 감탄했다. 그 다음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의 상해 임시정부청사 방문은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망국의 설움, 극도의 생활고 속에서 나라가 없어지느냐, 독립국가로 세워지느냐의 기로에서 김구 주석 및 요인들은 얼마나 고통의 세월을 보냈을까 하는 애절한 마음에 가슴이 저려왔다. 나라와 조국을 위하는 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삶이 있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장가계에서는 비록 빗속에서의 관광이었지만 대자연의 웅장함에 감동했다. 천자산, 십리화랑, 금편계곡 등 마치 그림속에서나 보던 금강산의 절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장관들을 목격했다. 역시 거대한 국토에 비례한 무궁무진한 자원의 가능성이 한없이 부러웠다.
한편 장가계에서 만난 물건 파는 어린 아이들, 관광지 구석구석마다 펼쳐놓은 노점들, 물건 사라고 내지르는 소리들은 아름다운 관광지의 이미지를 흐리고 있었고, 관광대책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인지, 복지대책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정부에서 머리깨나 아프게 풀어야할 난제로 보였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보고픈 가족들의 얼굴은 어렴풋하고, 수많은 중국인들의 자전거 행렬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 모습은 내게 여러가지 의미를 남기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허영심이나 사치 같은 것들은 없었다. 남의 눈을 의식한 몸짓도 없었다. 근면과 성실이 그 속에 녹아있었다. 그 거대한 대자연의 국토에 담겨진 가능성에 더해서, 그 거대한 중국인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서늘한 공포가 엄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