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과 사과나무
한반도에 전쟁이 멈춘지 6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전투가 벌어지면 승자와 패자가 있은 후에 끝나기 마련인데, 역사에 유래없이 한반도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전쟁이 멈추어 있다. 그 세월이 60년을 넘겼으니, 우리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보다 더 전쟁이라는 늑대를 무시해왔다.
현재 우리의 상대편 두목은 전쟁이라고는 코빼기도 본 적 없는 하룻강아지로, 무슨 세상살이를 전쟁놀이 정도로 아는지 지뢰와 포격을 남발하고 있다. 우리 또한상대편이 던진 포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엔 너무 오랫동안 가짜 평화에 길들여져 있다. 이번에도 늑대 소년이 오랫동안 외쳐왔던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제 저녁 직장내 전직원 행사를 마무리할때 쯤 담당 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북한의 포격도발에 전직원은 주말에도 비상체제를 유지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전했다. 우리는 새삼 우리 가까이 와 있는 늑대를 느끼는듯 하여 섬뜩했다.
문득 전쟁, 종말...이런 것들이 생각났다.
나는 지구의 종말이 눈 앞에 왔을 때 무엇을 하고 싶은가.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나이 십대의 어느 쯤엔가, 마음에 몰래 품고있는 애절한 사랑을 세상 마지막 날앞에서는 고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젠 폭풍우 치는 들판과 언덕과 강가를 지나 어느덧 나의 집 가까이에 와 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진리 앞에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매일을 최선의 것으로 주인께 드리려 애쓰고 있다. 그것은 나의 주변환경이 바뀐다고 달라질 것은 아니다. 현재 이곳도, 또한 여기를 떠난 다른 세상도 동일한 분이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한 말이다.(우리는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로 알고 있지만) 이 말은 참으로 신실한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지금 인생과 사람앞에 신실하고 정직하게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우리는 또한 이 말을 기억할 수 있다.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 이 두 구절은 같은 맥락의 말일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옳다고 아는 것을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간다면 지구의 종말이라고 바뀔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