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며느리
옛날에 딸과 며느리가 함께 베를 짜고 있는데, 일하는 중에 그 어머니가 찰밥을 갖다 주었단다. 그런데 며느리는 손에 물을 묻혀서 찰밥을 한 움큼 입에 넣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데, 딸은 찰밥 한번 집어 먹고는 손에 묻은 밥풀 뜯어 먹는다고 일을 못하더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머니가 콩을 볶아서 넣어 줬더니만 며느리는 콩 한 움큼 입에 털어넣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데, 딸은 콩 껍질을 하나하나 까 먹느라고 또 일을 못하더란다. 이 이야기는 어릴때 엄마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올 추석에도 외며느리인 나는 추석연휴 동안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끼니별로 준비하여야 했다. 그리고 대부분 기름기 있는 명절 음식으로 지친 몸을 위해 마지막 날엔 된장찌개를 칼칼하게 끓이려고 올해 담은 된장을 준비해 갔다. 집에서 미리 테스트해 본 결과 맛이 꽤 괜찮아서 어머님께서 두고 드실 수 있도록 넉넉하게 담아갔다. 그런데 일찌감치 내려온 막내시누이가 자기는 된장을 사서 먹는다고 된장을 좀 얻어갔으면 한다. 반만 덜어가도 일년을 먹겠다고 하는걸 굳이 어머님은 통째로 들고 가라고 하신다. 에공, 내가 어떻게 담은 된장인데...
문득 저 옛날 이야기가 떠오르며, 엄마는 왜 예언처럼 저런 얘기를 내게 들려주고, 그것도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게 마음에 콕 집어 넣어주어서 꼭 그런 며느리로 살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실은, 영원히 며느리의 삶이 올 것 같지 않을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도 딸의 멍청한 모습 보다는 며느리의 프로 같은 모습이 좋았다.
명절에 시댁 밥상머리에서 막내시누이가
"오빠는 행복하겠다. 새언니가 요리를 잘해서." 라는 소리를 듣고,
친정식구들이 모였을 때는 막내 동생이
"신랑이 큰 언니네는 평소에도 저렇게 해먹는줄 알고 나한테 반찬투정 한데이."
하며 하소연을 한다.
명절 며느리.
좀 고되지만, 능숙하게 해내는 며느리가 든든하고 멋있다고 여겨진다. 엄마가 들려준 며느리상은 아름답다.
어떤 엄마들은 딸에게 일을 안시킨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해 버릇하면 시집가서도 고생한다고. 딸만 둘인 나는 우리 딸들이 일 잘 해내는 며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친정에 오면 내 힘 닿는데까지 맛난 것 해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