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친구에게 호박죽을 끓여주며

안동꿈 2015. 10. 7. 08:57

친구가 큰 병을 얻었다. 

여섯 시간의 긴 수술 후 직장에는 병가를 내고 집에 들어 앉았다. 친구 집이 나의 직장과 아주 가깝다.  문득, 친구에게 호박죽을 끓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아주 오래 전에 친구들에게 끓여준 단호박죽이 맛났었다고 요즘도 만나면 얘기를 하곤 한다. 단호박 2통을 사고, 냉동실에 있던 양대콩을 준비하고 명절에 얻은 밤을 깠다. 집에 있는 찹쌀을 불려서 믹서에 갈아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하여 완성하였다.

 

친구와 만날 시간을 정하고 어느쯤에서 보자 하고 나갔다. 조금 이르다 싶게 나갔더니 일찍 장소에 도착하여 슬금슬금 친구집 쪽으로 걸어갔다. 전화가 왔다.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일찍 출발한 친구는 약속 장소를 정확하게 몰라 내 사무실 쪽으로 무작정 건너서 걸었더니 그 장소가 건너편에 보이더란다. 통화중에 서로를 발견한 후 6차선 너른 길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걸어서 만났다. 친구는 최근 살이쪄서 작아진 옷 몇가지를 챙겨왔다. 취향이 비슷하여 원래 내 옷처럼 자연스러웠다. 

 

삼십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오면서 친구에겐 주고받은 것에 대한 셈을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런데 친구는 생각한 적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항상 내가 너무 많이 받았으니까. 

 

이번에 친구 수술 후 회복중에 친구들과 같이 병문안을 갔다. 거기엔 직장 친구들이 여럿이 함께 와있었다. 그 중 하나는 얼핏봐도 여러 면에서 친구와 비슷하고 이름도 익숙하여 오랜 지기 같았다. 그 친구는 바쁜 직장중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을 들렀고 며칠은 밤을 지켰다고 한다. 나의 친구는 지그시 웃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문득 낯선 감정이 스쳤다. 그건 나와 친구간에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그 '셈'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내가 친구에게 넉넉히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늘 넉넉히 내가 받았던 것, 그것이 물질이 아닌 애정이나 우정이나 사랑이나... 그런 것일지라도... 이젠 내가 준 만큼만 내가 받은 것 같은 그런 서운함, 그런 익숙하지 않은 셈에 대한 것...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 분명하게 말로 드러낼 수도 없고, 드러내고 싶지도 않은 그 낯선 느낌을 그저 몸의 곤함 속에 섞어둔 채 눈을 감았었다.

 

어쩌면 그 셈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호박죽을 끓인건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다는건 이렇게 셈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