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옆자리에 관하여
좌석버스가 일반버스보다 불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편리하고자 요금을 더 주는 그 좌석 때문에 나는 불편을 겪는다. 두 사람이 같이 앉을 수 있게 되어있는 이 의자는 전혀 낯선 사람과 함께 앉아야 한다는 데 곤란한 부분이 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엔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졸음이 곁을 지키고 있어서 잠시 이별의 키스라도 해 줘야 기분좋게 떠날 것 같을 때가 있다. 조용한 이별 세레모니를 계획하고 있을때, 돌연 의자를 나눠 갖기엔 좀 부족할 덩치의 남자가 옆자리에 주인인양 턱 꿰차고 앉는다 그러면 우리의 이별 세레모니 계획은 산통 다 깨지고 만다. 괜히 부아가 치밀고 하루가 암울하게 다가오고... 누군가는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고 했는데, 그 순간에는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 보인다. 낯선 남자 옆에서 편안한 잠에 빠져들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오히려 나는 여자에겐 관대한 편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낯선 남자 보다는 낯선 여자가 훨씬 편할 것이다.
며칠 전 퇴근 시간에 잠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와서 앉은 여자분이 대뜸 "눈이 좋으신가봐요." 한다. 세련되어 보이는 그 여성은 넉살좋게 계속하여 말을 건다.
"차 안에서 책 보는거 눈에 되게 안좋은데, 혹시 오십대?"
"아니요. 아직 이 년 남았습니다."
"그럼. 내가 한 살 언니네."
이쯤되면, 내 입장에서는 슬슬 짜증이 날만도 한데, 나는 별로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여자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낯선 사람에서 불쑥 말을 걸 수 있는 것과 여자 나이는 가늠하기 어렵고 지극히 예민한 부분인데 대뜸 생각나는대로 내 뱉을 수 있는 것 등... 커다랗고 초롱한 눈, 동안 피부, 세련된 목소리...그런 것들이 그녀의 자신감의 원천일까. 뭐 그런 생각들을 편안하게 했던 것 같다.
좌석버스를 타면서 이상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자들은 항상 여자의 옆자리를 찾아서 앉는 반면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옆자리를 찾아 앉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별 객관적인 근거는 없지만 나의 주관적인 숙고의 결과로 얻은 결론은 남자들이 자리 하나에도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려는 경향 때문이며, 여자들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옆자리를 찾아 앉지만 남자가 자리를 선점하고 있는 곳은 주도권을 빼앗길 우려 때문에 피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본능적으로 행해질거라는 것이 내가 내린 지극히 주관적인 결론이다.
버스를 하루에 두번 꼬박꼬박 타는 입장에서 버스에 대한 상념들을 길게 늘어 놓았았다. 버스와도 옆 동행자와도 화목할 수 있는 요령에 대해서도 한번 숙고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