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
남편이 나와 같이 보려고 볼 기회를 여러번 지나쳤다고 졸라댄 영화,
나는 연말연시, 인사발령 등으로 바쁜데 영화타령한다고 모른척한 영화, 그 히말라야를 금요일 저녁에 드디어 보러 갔다.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을 감수한 건지 애매모호한, 어느 정도는 상대방을 위해서, 또한 나를 위해서. 그 구분없는 DMZ가 부부사이에는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영화를 내릴 때가 다 되어선지 8시 40분 밖에 없단다. 저녁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느릿느릿 걸어 영화관에 일찌감치 도착하여 여유있게 영화를 기다렸다. 늘 시간에 쫓기다,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익숙치가 않았다.
영화는 무척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하루종일 추위와 일에 찌들려 피곤이 몰려와 연신 하품을 해대다가 영화가 시작된 순간 정신이 번쩍들었고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영화에 빠져들었다.
나는 '내려올 산을 왜 힘들게 오르냐'고 비아냥거리는 게으른 현실주의자도 아니고,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른다'는 막연한 이상주의자도 아니다.
산을 자주 오르진 않지만 어릴 때 산을 놀이터 삼아 오르내렸고, 산이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주는 호흡과 느낌을 알고 있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 에베레스트 8750미터에서 신이 그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낼 때 인간은 그곳을 '신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영화는 이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된다.
엄홍길대장의 말은 그야말로 죽음의 고비마다에서 건져올린 '인생의 보석같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산은 절대 '정복'하는게 아니다. 그저 산이 잠시 그의 정상을 인간에게 허락해 주는 것 뿐이다."
"해발 5000미터만 넘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알 것 같고, 해발 7000미터만 넘으면 철학적인 생각이 들 것 같죠? 그런 건 없어요. 다만 너무 힘들고 지칠 때,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알지 못했던 나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요.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자신의 진짜 민낯을 모르고 살수도 있어요."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접근한 자의 겸손이 구구절절이 느껴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8000미터 히말라야를 오르는 일은 신을 체험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존재 중에서 인간이 가장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게 아닐까. 다시말해 인간의 손이 가장 미치지 않은 곳에 하나님의 손길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그곳이 히말라야고, 그곳을 오르는 일은 신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들이 계속하여 나의 마음을 꿰뜷고 지나가고 있었다.
히말라야를 보며 예상보다 많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남편이 그런 나를 보고 많이 변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죽음과 동료애와 사랑 등에 대한 인간적인 모습 보다, 영화 속에서 계속하여 사라지지 않는 울림은, 신의 존재와 인간의 약함과 신을 체험한 자들의 겸손함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 엄숙한 진리가 나를 그저 감성적인 눈물에 빠져들지 않게 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