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강가 단상

원칙을 지키는 것

안동꿈 2016. 1. 20. 22:37

남편이 1호로 주례를 해준 제자부부가 있다. 지난 연말에 정성껏 커피를 갈아서 우리를 찾아주었다. 그들이 갈아주는 커피가 얼마나 맛난지 그저 감사함으로만 받지 못하고 '언제쯤 또 보내주려나.' 욕심이 생겨 버렸다. 어쨌거나 이 부부중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녀는 모든 일을 원칙대로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원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그날도 넷이서 식사를 하러 가는데 주차를 하고 바로 2차선을 건너면 식당인데, 15미터쯤 되는 곳을 걸어서 건널목을 건너 돌아왔다. 사실 우리 부부는 그리로 자주 지나가는데 무단횡단을 자주 한다. 그런데 그날 넷이서 건널 때는 가다가 멈칫 한 것도 아니고 약속이나 한 듯이 건널목으로 걸어갔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절대로 원칙을 지키도록 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서운 선생님 옆의 아이들처럼 행동했다. 이것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결혼초에 이 일로 심하게 충격을 받은 신랑이 남편에게 상담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나도 어릴 때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것 같다. 담임선생님이 한 학기가 끝날 때쯤 교과서의 마지막 부분 수업을 끝내고 '오늘 책걸이 했으니 책걸이떡 해오너라.'고 했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엄마를 졸라 급히 떡을 만들어 다음날 학교 선생님께 갖다 드렸다. 그런데 반 아이들 전체에게 얘기를 했는데, 나만 그 말대로 했었고 그날 나는 선생님께 순종한 아이의 자랑스러움 보다는 순진하게 행동한 아이의 민망함만 남았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의 기억은 매년 초등학교 겨울방학을 시작할때 방학 안내문에 방학숙제와 함께 정월 대보름날 연날리기 대회 안내가 있었다. 나는 매년 한번도 빠짐없이 가오리연을 소박하게 만들어 학교로 갔고 학교 언덕에 올라 수많은 화려한 연들의 틈바구니에서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연을 날리려고 언 손을 호호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또래 여자친구들은 아무도 연을 만들어 오는 친구들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초등학교 6년 동안 계속하여 그 과정을 반복했다.


원칙을 지키는 일.

때로는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은 원칙대로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결코 답답하거나 비효율적이지 않다. 열번 요행히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수습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원칙을 지키지 않은 세월들이 쌓여 지금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릴 때의 내가 아닌 것을 안다. 원칙대로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원칙이 비효율적이라서가 아니라 어른의 때가 묻어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원칙을 지키는, 어찌보면 주위에서 답답하게 느낄 정도로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사람들이 조직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와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그나마 어릴 때 선생님께 순종했던, 원칙을 지켰던 생활의 기억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의 모범적인 태도에 마음이 움직이고, 새롭게 생활을 결심할 생각도 가지게 되니 그 시간들도 헛되지는 않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