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책읽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by 포리스트 카터

안동꿈 2016. 3. 26. 08:16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한 단락을 읽고 나면, 고개를 들고 그림을 그려보고 미소가 얼굴에 번져서 가슴으로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책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었다. 분주한 생활 중에 책 반납 기한에 맞춰 급히 읽고 돌려줬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난 이 책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이 책의 속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친구가 사다 줘서 다시 읽고, 나는 전혀 새로운 책으로 만났다.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일부 이어받은 주인공 '작은 나무'는 부모를 다 잃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게 된다. 그의 나이 다섯 살부터 아홉 살쯤까지의 생활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거기에는 슬픔도 즐거움도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삶에 녹아서 흐른다. 그 두 다른 감정이 여기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인다.


대지의 풍성함과 자연의 다채로운 아름다움 위에, 할아버지의 강인하고 선 굵은 사랑과 할머니의 인자하고 세심한 사랑이 이 작은 나무를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시키는지를 잔잔히 둘러보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

작은 나무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한 사년 여의 시간동안 체득한 삶의 자양분은 그의 앞에 놓여진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도 견뎌낼 수 있게 할 것이다. 그의 안에 잘 심겨진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삶의 지혜의 씨앗들이 잘 자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나무에게는 오늘날 우리가 갖추어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리라고 여기는 재료들이 아무 것도 없어 보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아이들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얻을 수 없을 풍성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가르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말이나 기술로 가르칠 수 있는 것보다 삶으로, 공기로, 눈짓으로, 아니, 말이 아닌 것으로 훨씬 가치 있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작은 나무를 통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그토록 가난해도, 그토록 무시를 당해도 왜곡되지 않고 바르게 세워지는 자존감과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던 작은 나무에게서 다시금 세상을 새롭게 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


할아버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깨워주겠다'고는 하시지 않았다.

"남자란 아침이 되면 모름지기 제힘으로 일어나야 하는 거야."

할아버지는 조금도 웃지 않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신 후 여러 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셨다. 내 방쪽 벽에 쿵 하고 부딪치기도 하고, 유난스레 큰 소리로 할머니에게 말을 걸기도 하셨다. 사실 나는 그 소리 때문에 눈을 뜬 것이다.


개울에서 물을 튀기며 다니는 바람에 옷이 젖었지만 할머니는 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체로키는 아이들이 숲에서 한 일을 가지고 꾸짖는 법이 절대 없다.


할아버지는 링거가 그렇게 충실한 개가 아니어서 우리가 별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러면 아마 기분이 더 안 좋았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또 할아버지는 내가 나이가 들면 링거 생각이 날 것이고, 또 그렇게 생각을 떠올리는 걸 좋아하게 될 것이다. 참 묘한 일이지만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정말 별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작는 나무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제 입으로 자기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떠벌리는 사람한테는 조심하겠다는 뜻이지?"

"예, 할머니, 그래요."


자연의 비밀이 이미 다 밝혀졌고, 자연에 영혼 따위는 없다고 하면서 자연을 비웃는 사람들은 산속의 봄태풍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자연이 봄을 낳을 때는 마치 산모가 이불을 쥐어뜯듯 온 산을 발기발기 찢어놓곤 한다.


침대에 들었을 때, 나는 엄마가 죽고 난 후 처음으로 울었다. 하지만 담요를 입 안에 쑤셔넣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