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살아가기
시계를 고쳤다.
하나는 시각을 가리키는 큐빅이 떨어져서 돌아다니며 시계바늘을 자꾸 멈추게 하고 있었고, 또 하나는 약이 다 되어 멈추어 있었다. 집에 있으니 시계 볼 일도 없고, 시간에 쫓길 일도 없어 시계없이 지내다가 두 개를 한꺼번에 고치기로 했다. 남편은 요즘 마트에 가면 고치는 비용 정도면 새 시계를 살 수 있는데 굳이 고치려느냐고 핀잔을 준다. 나는 낯선 새 것보다 고쳐 쓰는 내 것이 좋다고 했다. 시계약을 넣으며 낡은 가죽 시계줄까지 갈았더니 돈이 제법 들었을 뿐 아니라, 꾸진 시계 고치러 온 손님을 그 시계만큼 대우하는 수리점 아저씨의 표정까지 받아 먹어야 했다. 그래도 고친 시계 받고 보니 기분이 좋았다. 시계가 많다고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마치 시간을 가진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지니 나참.
요즘 나는 몇 배속 느리게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깨닫는 중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의 일생 동안 해야할 일과 매일의 일들을 허락하실 때, 내가 한꺼번에 두 세가지를 하거나 또는 뛰거나 서둘러야만 할 수 있는 분량을 주실리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분주하거나 서두르거나 바쁘다고 호소하면서 하는 모든 일들은 내가 욕심을 부리거나 아니면 게으름을 부렸다는 증거이다.
서두르는 삶은 나를 결코 행복하게 할 수 없으며 내 주위 사람들도 힘들게 한다. 잠시 멈추어 서서 삶과 거기에 얽힌 시간들을 정리하고 정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게으름과 욕심이 묻은 부분들을 털어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한꺼번에 몇가지를 하면서 분주하게 사는 삶은 스스로에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것도 몸을 망가뜨리면서.
요즘 나의 잔잔한 일상이 감사하다. 책을 읽다가 돌아 앉아 도라지를 다듬는 일, 창 밖에 반짝이는 봄 햇빛에 쑥 생각이 나서 대뜸 들로 나가는 일, 친구랑 카페에 몇 시간씩 앉아 수다떠는 일들... 내 평생에 봄날이다.
내가 갈 길만 쳐다보며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건강의 붉은 신호등 앞에 잠시 서서 둘러본 주위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이제 이 건널목을 건넌 후에는 달려가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가끔씩 주변을 둘러보며 걸어가도 충분히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