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적용할 것인가.
요즘 '홀로서기'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십대엔 부모로부터 독립을, 스물의 청춘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던졌던 사랑으로부터의 독립을 생각하곤 했지만, 이제 고요히 되돌아보는 삶의 길목에서는 그 '홀로서기'란 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위에는 나이들어 중년이 지나는데도 여전히 홀로서기가 힘겨운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마음에 일어나는 슬프고 외로운 감정들을 누군가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무작정 나 아닌 다른 사람부터 찾는다. 자신을 짓누르는 그 무거운 감정을 일단 남에게 던져놓고 보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무턱대고 털어 놓는 일은 자신에 대한 무책임과 함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사람들은 그런 감정들 앞에서 먼저 숙고하게 된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며, 어떤 경로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가장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등을 숙고한 후에 행동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과 감정들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들에 대해 자세히 숙고하게 되면 대부분 문제는 해결이 된다. 더 해결해야할 문제가 남아 있다면 감정을 드러내기 보다 그 감정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종료 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실행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숙한 사람의 생활 방식이다. 성숙한 사람만이 홀로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된다.'는 말을 진리인양 쓰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말은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우리 인간은 남의 슬픔을 진심으로 슬퍼해 주지 못한다. 심지어 그것이 자주 반복되면 그를 멸시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남의 기쁨을 진정으로 기뻐할 수 없다. 오히려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어쩌면 이 말은 '이웃에게 친절히 대하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 처럼 사실이나 진실이 아닌, 당위성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그 뜻은 '남의 슬픔을 같이 나누어 주라. 다른 사람의 기쁨을 시기하지 말고 함께 기뻐해 주라.' 라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 아. 나의 슬픔을 남에게 얘기하면 반으로 줄어들거야. 기쁜 일이 있는데, 남에게 얘기해야지. 두 배가 된다고 했지.' 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섣불리 자신의 슬픔과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행동 후에 일어날 결과를 먼저 가늠해 보고 행동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것이 홀로서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