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가 조사한 작가란?
파울로 코엘료가 「흐르는 강물처럼」 프롤로그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작가가 되고싶다고 했더니 작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러느냐고 한다. 그래서 그당시, 1960년대 초에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기 위해 그가 작가에 대해 조사한 것을 기록해 놓았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피식 웃어 버려서 되게 창피했다.
a) 작가는 항상 안경을 걸치고, 절대 머리를 빗는 법이 없다. 늘 화를 내거나 우울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는 술집에서 역시나 헝클어진 머리칼에 안경을 걸친 다른 작가들과 격론을 벌이는 데 일생을 바친다. 작가는 매우 '심오한'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제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며, 가장 최근에 출간된 자신의 책을 몹시도 혐오한다.
b) 작가는 자기 세대로부터 절대 이해받아서는 안 될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따분한 시대에 태어났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동시대인들에게서 이해받는 건 천재로 간주될 기회를 송두리째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확신한다. 작가는 자신이 쓴 문장을 끊임없이 다듬고 수정한다.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삼천 개 내외인데, 진정한 작가는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제외하고도 사전에는 아직 십팔만 구천 개의 단어들이 남아 있는데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 잖은가.
c) 작가의 말을 이해하는 건 동료 작가들뿐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남몰래 동료들을 경멸한다. 그들은 결국 문학사에 수세기 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는 영광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들이니까. 작가는 '가장 난해한 책'이라는 영예를 안기 위해 동료들과 경쟁한다. 이 싸움에서 승자는 가장 읽기 어려운 책을 쓰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d) 작가라는 사람은 기호학, 인식론, 신구체주의 같은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명사에 조예가 깊다. 누군가에게 겁을 주고 싶으면 이런 말을 들먹이면 된다. "아인슈타인은 바보야", 혹은 "톨스토이는 부르주아의 광대였어".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아니꼬워하면서도 그 자리를 뜨자마자 상대성이론은 엉터리이고 톨스토이는 러시아 귀족사회의 옹호자였다고 떠벌리게 될 것이다.
e) 작가는 여자를 유혹하고 싶을 때마다 냅킨에 시 한편을 써서 건네며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작가입니다." 언제나 통하는 방법이다.
f) 작가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학비평을 한다. 그는 비평가로서 동료들의 작품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나 그가 쓴 평론의 반은 외국 작가의 인용구로, 나머지 반은 '인식론적 단락'이니 '융화된 2차원적 삶의 비전' 같은 표현 따위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감탄할 것이다. '참 똑똑한 사람이야!' 하지만 막상 책을 사기는 꺼린다. 인식론적 단락 앞에서 쩔쩔매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g) 작가는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늘 남들이 듣도보도 못한 제목을 댄다.
h) 작가와 그 동료들에게 한결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책은 세상에 단 한 권뿐이다.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이 작품을 깍아내리는 작가는 없다. 하지만 책 내용을 물으면 횡설수설한다. 정말로 그걸 읽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