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강가 단상

투표소에 나타난 어머니와 두 아들

안동꿈 2017. 5. 10. 23:35

선거일. 여느 사람들은 몇 분간의 투표의무만 지키면 되는 공식적인 공휴일.

나는 투표사무를 위해 새벽 네시반까지 출석해야 했다. 알람을 세시반에 맞춰 놓았지만 한 숨도 못자고 씻은지 몇 시간 만에 다시 씻고 투표소로 갔다. 


시간마다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긴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투표소 안이 시끌벅적해진다. 칠십은 족히 넘을 듯한 노파가 건장한 성인 아들 둘을 양손에 잡고 신분증 세 개를 들고 들어섰다. 그런데 아들들이 책상위에 있는 사탕과 과자들을 보더니 흥분하여 넘어질 듯 달려들어 집어 먹는다. 아들은 둘다 1급 발달장애인들이었다. 본인확인, 서명 등 투표사무원이 요구하는 사항에 부응하며 아들들을 통제하는 노파는 힘에 부치기는 하지만 마치 전투에 임하는 군인같았다.


아들들은 조금 이동하더니 또 다른 간식거리에 몸을 던져 쟁취하는데 마치 난동을 부리는 것 같았고 주위 사람들은 겁을 먹고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들을 나무라기도 하며 통제하며, 규정대로 아들들의 투표까지 도와서 그럭저럭 투표를 모두 마치고 돌아갔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 나는 가슴이 뭉클해왔다.

그 어머니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편하게 인생을 사냐는 1차원적인 생각도 났다. 생명은 얼마나 질긴 것이며 삶은 얼마나 숭고한 것이냐는 한 계단 더 나아간 질문도 떠올랐다.


그 어머니는 생활이, 육신이, 생명이 요구하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끌려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절망할 겨를도 없어 얼굴은 생기가 있었고, 몸이 늘어질 겨를도 없어 몸은 재발랐다.

감당하기 힘든 삶이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니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거두면서 하루하루 옮겨가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위대함과 삶의 숭고함은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그 아들들의 연약함과 그 어머니의 수고는 그저 절망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망이고 희망이고 용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출현은 보는 이들에게 한줄기 바람으로 지나간다. 그것이 어떤 향기를 지닌 바람일지는 각 사람들이 지닌 자신의 향기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볼 겨를이 없었다. 한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휘몰아치는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