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나는 무척이나 오만하고 교만한 마음이었었나 보다. 이 책은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웠다. 아마 철학적인 바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과제로 택하면 억지로라도 읽을까 싶어 택했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과제를 수행하고 여기 기록을 남겨본다. 이 과정을 통해 철학의 거장 임마누엘 칸트에 대해 알게 된 것과 그의 주저(主著) '순수이성비판'에 대해 대략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두고자 한다.
칸트 이전 서양철학에서는 인간이 세계, 자아, 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며 많은 인식체계나 철학체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인간이 알고 있는 그 내용에만 관심을 갖고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를 밝혀내고자 했다. 그러나 그 앎의 내용은 모두 인간의 인식능력을 통해서 얻어낸 앎이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의 인식능력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했다.
우리는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 그리고 인간의 정신현상들에 대해 그 진위여부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고 각기 다른 경험과 지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완전한 잣대로 얻게 되는 결과물을 우리는 올바른 지식이나 진리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보편성 또는 일반성을 띠어야 하고 반드시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성을 지녀야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자연의 대상이 우리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고 우리에게 있는 선험적 형식과 틀이 자연의 대상을,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리는 우리가 외부 사물을 올바르게 모사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스스로 형식(선험적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것에 대한 판단인 것이다. 우리 감각기관을 통하여 우리를 촉발하는 갖가지 자극은 우리에 의해 통일되고 정돈되지 않으면 도통 알 수없이 마구 뒤섞인 것일 뿐이다. 이 감각적 직관들은 우리의 시간적 공간적 형식에 의해 정돈되어 가고 그 전반에 사고능력으로서의 지성이라 할 수 있는 자아의 작용이 꼼꼼하게 파악하고 총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의 틀 아래 감각적인 소재를 종속시켜 나가며, 우리의 형식에 의해 내용 질서를 잡고, 그것으로 경험과 경험적 대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통일, 총괄, 질서 세우기 또는 구성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자아였다.
칸트는 이 순수이성비판을 통해서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다. 자연과학적 지식이 형이상학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었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 위에 군림하며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들고 그것을 통합, 통일하고 지배할 만한 형이상적인 것 신적인 것이 존재함을 칸트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법정의 심판을 받은 합법적인 새로운 형이상학을 세우고자 했다. 그 비판과정을 통해 칸트는 우리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를 확정하고자 했던 것이다.
칸트의 비석에는 ‘내게 경외심을 일으키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머리 위에 빛나는 별과 마음속의 도덕법칙이 그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것은 그의 평생의 삶을 관통하는 가치관으로, 하늘을 우러르며 인간의 유한성을 깨달음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온전하게 인식했다고 여겨진다.
내가 이 책을 다 이해못했으므로 이 즈음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이 위대한 철학자의 그 엄청난 지식의 결과가 인간에 대한 바른 앎이며 그로 인한 겸손'임을 보았다. 비록 내가 그 위대한 지식에 근접도 못할지라도 그의 겸손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이 결론이 지금 내게는 가장 큰 소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