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책읽기

개인주의자 선언 by 문유석

안동꿈 2018. 8. 25. 17:43



출근길 아침, 동해선 승강장에 들어서니 중후한 바리톤의 오페라가 희미하게 들린다. 벤치에 앉은 허름한 옷차림을 한 노인의 가방에서 흘러나온다. 나는 오페라와 허름한 노인과의 연관성을 생각하려고 했다.



그 광경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잠깐 혼란스러웠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외양과 내적인 양식을 일치시키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와는 안 맞지 않나. 그것은 어떤 인위적인 권력에 의해 주입되고 강요된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 아닌가.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런 인위적인 일치가 오하려 더 자연스러운 것은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우리나라의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를 비판한다. 집단주의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개인의 행복과 능력을 짓누르고, 개성보다는 동일한 색깔을 강요하고, 집단 내에서도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동일성을 찾아 자신의 뒤로 줄을 세우고 또 줄을 선다. 서로 비슷한 색깔들로 그룹을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려 한다. 자유로운 색깔이나 취미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곧 낙오를 의미하는 것. 이것이 집단주의 문화의 엄청난 폐해다. 거기에는 자유로운 사상이나 개인의 능력이나 개성은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걸로 하겠다,"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라는 엄청난 장벽 앞에 맞서 싸워본 자의 처절한 고백이라서 더욱 씁쓸하다.


우리 사회가 제도나 법적인 틀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잘 갖추었지만 각각의 조직 내부의 문화는 여전히 서열과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구성원들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음을 많이 느낀다.


저자는 합리적 개인주의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구별된다.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또한 현대의 합리적 개인은 자신의 비합리성까지도 자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개인주의는 각자도생의 이기주의로 전락하여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마저 저해할 뿐이다. 자기 이익을 지속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양보하고 타협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합리성이다.  


이 합리적인 개인주의가 제대로 자리잡을 때 그것이 엮어져 조직을 이룬다면 우리가 구호로 내걸고, 모든 개인들을 압박하며 이루고자 하는 조직의 정의와 목표가  자연스럽게 달성된다고 확신한다.  


"문유석 판사의 일상유감" 이 책의 부재다. 저자의 일상에서 느끼는 견해들이 자유롭게 씌어져 공감하며 편안히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속한 조직의 권위적이고 딱딱한 문화 탓일까 전반적인 주제는 다소 무겁다. 또한 우리가 속한 사회 전반에 편만해 있는 이 문제가 진실이기에 더욱 마음이 무겁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알아야 하는 것이 전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 것이 긍정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