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17년만에 연락된 친구

안동꿈 2009. 8. 28. 15:29

아이러브스쿨이 연락병 역할을 한 경우가 꽤 되리라 생각된다. 가입한지 8년이 넘도록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들어가 보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아니, 늘 생각은 났지만 연락할 길이 없던) 친구가 몇달 전에 남긴 쪽지가 있었다. 당장 연락하고 싶었지만 망설여졌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매사에 너무 심각한 내 성격 탓이리라. 그녀와 한 반이던 고등학교 2학년 이후의 여정들을 돌아보느라 고등학교, 대학교, 현재가 온통 뒤섞여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를 한참을 그랬다. 그 후 몇달 뒤 그녀에게서 또 하나의 쪽지가 왔고, 두어달쯤 후에 나는 그 쪽지를 보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가 고등학교 친구들 몇 명과 함께 해운대에 놀러 오기전에 보낸 쪽지였다. 즉시 연락하였다.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다가도 결정적인 선택은 순간의 느낌으로 해버리는 것이 또한 어쩌지 못하는 내 습성이다. 구차스럽게 변명도 하였다.


그녀와 나는 많이 다르다. 그녀는 매사를 가볍게 다루었고, 나는 아니었다. 사실 이 결론이 어느 정도의 진실인지는 그녀의 동의에 달렸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그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는 같은 반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친한 친구들의 부류가 달랐다. 그녀는 한마디로 쿨한 성격으로 많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지냈고, 나는 뜨뜻한(?) 성격으로 몇 명만 유별스럽게 가까웠다. 그 친구가 눈에 띈 데는 굉장히 똑똑한 오빠에 대한 소문도 한 몫 했으리라. 3년전 대학입시에서 경북수석을 하였고,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한 오빠에 대한 소문이 그녀와 한 반이되자마자 떠돌았다. 그녀도 공부를 잘했지만 오빠에 대한 소문으로 초긴장했을 몇 친구들에게 조금 위안이 된 정도였다고나 할까.

 

아직도 생각나는 건 그때 그녀의 오빠가 편지에 적어온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반 친구들이 모두 돌려가며 읽었던 일이다. 나는 그때 '언어의 유희'와 아름다움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시절 우리들에겐 공부보다 친구가 더 이슈였던 시절이었고, '지란지교'는 그대로의 의미 이상으로 읽혀졌다.   

그녀는 그녀 주위의 친구들이 서로 다툴 정도로 '핫이슈'였다. 여름방학이 다가올 즈음 들은 얘기는그녀가 방학이면 반 친구 거의 대부분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방학중에 보내온 편지는 A4용지에 연필로 날려쓴 간단한 현재의 심경, 참 쉽게 써왔다. 별로 가깝지도 않은 나에게 보내온 편지, 반친구들 대부분에게 보냈으니 별 의미야 있겠냐만 나는 또 특유의 심각함으로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 애썼다.

 

고3도 지나 그녀는 대구로, 나는 부산으로 각각 떨어졌고, 이젠 친구들 무리로부터 놓여났으리라 여기며 그 친구에 대한 그간의 숨겨온 호기심으로 편지를 썼다. 그후 장장 4년간 주고받은 편지는 지금도 박스에 담겨져 보관되어 있다(물론 받은편지 뿐이지만) 한번씩 돌아보면 그녀의 편지가 참 우울했었는데, 내 것은 더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녀의 편지는 쉽게 씌어진 듯했고,나는 늘 어렵게 썼다. 물론 그건 편지의 내용이 아니라 삶을 다루는 태도가 그랬던 것 같다.

 

그녀는 나보다 1년 빠른 스물다섯에 결혼했고, 그 즈음에 연락이 끊어졌다. 사는 주소가 바뀐 형이하학적인 요인과 채워져야할 마음의 빈자리가 없어졌다고 보여지는 형이상학적인 요인, 이 두가지의 원인이 짐작된다. 빈자리는 커녕 자신의 직장, 남편 내조, 아이 양육 등 누구 빈자리 있으면 빌리고 싶은 시절들 아닌가. 그런데 17여년만에 다시 연락이 된 것이다. 그녀의 개인카페를 통해 그간의 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고, 고등학교때 똑똑한 오빠로 이슈가 된 것 못지않게 똑똑한 아들이 엄청 나를 놀래켰다. 자녀들을 위해 많은 여행을 했고, 아이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엄마로서 줄 수 있는 사랑을 주기 위해 자신은 큰 희생을 치른걸 알 수 있었다. 

 

요즘 우리는 아침에 출근과 동시에 서로의 카페와 블로그를 통해 살아 있는걸(?) 확인하고 일을 시작한다. 상대가 나이 먹은걸 보고 거울을 보듯 나 자신도 나이가 든걸 확인한다.

 

우리가 알게된 꼭 그 때를 지금 우리의 아이들이 살고 있으니, 그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구구절절 얘기하는 것도 참 주책같다. 이 글을 읽은 친구가 이건 'NO'할 부분이 있을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