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내 블로그를 읽는다
2009년에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벌써 십 년째다. 십 대 시골 소녀처럼 소박한 내 방 하나 가진 것에 기뻐하며, 저녁이 오면 그곳에서 하루를 돌아보고 일기장을 채워가는 즐거움으로 지내온 시간이다.
때로는 지난 글들을 읽는다. 옛날 일기장을 꺼내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는 없지만 새로운 감정은 생겨난다.
급하게 포스팅한 설익은 글들은 민망하기도 하다. 감정에 이끌려 앞뒤 논리가 맞지 않는 글, 서둘러 맺은 결론들, 곳곳에 보이는 오타... 글의 가치는 부족하지만 개인사(史)적인 의미에서 두기로 한다.
흡족한 글들이 드물게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런 글들은 마음속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잘 익은 생각들이거나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진솔한 글임을 알 수 있다. 상처든 감동이든 마음 깊은 곳을 울린 그 울림에 비례하여 글도 깊이가 있지 않나 싶다.
바쁘고 힘들때도 꾸역꾸역 글을 남겼던 이유는 힘든 마음이 글을 통해 오히려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내가 느끼는 막연한 고통과 불안들을 하나하나 글을 통해 파헤처 봄으로써 그것의 실체를 바로 알고 대처할 수 있는 것이 글의 힘이고 블로그의 위력이었다.
마음을 흔들었던 다른 사람의 시는 자주 꺼내 읽는다. 시나 스크랩한 좋은 글들은 쉽게 꺼내 읽기 위해 담아두었으니, 이 또한 블로그의 유용한 점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일은 훨씬 마음이 자유롭다.
때론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인해 블로그는 자주 소환된다. 이 가방은 언제 딸들이 해준 생일 선물인지, 몇 년도 휴가때 속초에 갔는지, 큰 단지에 있는 된장은 몇 년도에 담은 것인지 등등. 살짝 검색해본 정확한 정보로 가족들과의 논쟁에서 쌓이는 신뢰 또한 블로그 덕분일 것이다.
블로그 초기에는 열정에 차서 내가 분주히 블로그를 끌고 다녔던 것 같고, 그 시기가 지나 열정이 좀 식었을 즈음 블로그가 명맥 유지를 위해 나를 끌고 갔고, 이젠 둘 다 욕심 내려놓고 내가 블로그를 이끄는 듯, 블로그가 나를 이끄는 듯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된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저녁을 먹은 후 조용히 내 방에 들어간다. 하루를 돌아보고 하루를 기록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