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파마후에

안동꿈 2009. 9. 3. 21:22

여름에 더워서 컷트만 하다가,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에 토요일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다. 짧은 머리에 파마를 했더니 아줌마의 트레이드 마크인 짧은 뽀글파마가 되었다. 남편은 괜찮다고 하고, 큰 아이는 하찮은 지식으로 '엄마. 눈이 큰 사람은 웨이브가 어울린데'라고 한다. 그나마 위안을 얻었지만 월요일 아침 거울 앞에서 평소보다 긴 시간을 보내고 출근했다.

 

여직원들은 '파마했네', '언제했어?' '나도 파마 해야되는데' '웨이브가 잘 나왔네' 딱히 좋은 평가는 아니다. 별 시원찮을 때, 한마디 던질 수 있는 공식적인 멘트인것 같다.

 

남자들은 원래 여자들 헤어스타일의 변화에 무반응이다. 특별히 섬세한 성격의 귀하신 혈통이 있으면 '헤어스타일이 바뀌셨네요'정도. 그런데 우리계장님은 아침에 만나서 방긋, 평소 그런 표정을 짓지 않는 분인데 뭐가 할말을 참는 듯하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점심식사에 특별한걸 드셨는지 용기백배 하여서 식사후 돌아오는 나를 보자마자 '정숙씨. 얼굴은 아니고 머리만 아줌마 같다. 그것도 촌 아줌마' 평소 목소리 크기로 소문난 계장님, 당연히 멀리까지 들렸고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난다. 몇몇 여직원들은 '계장님은 뭘 모르신다. 저거 비싼 파마에요' '계장님은 아들만 있어서 여자 마음을 모르시네'등 위로하면서도 웃음은 참지 못한다.

 

내가 10년전 아니 5년전에만 그 얘기를 들었어도 아마 눈물이 글썽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사십이 넘은 아줌마가 그 얘기로 눈물을 보일 수야 없지.

'뭐 이 머리로 나처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걸요' 라고 뻔뻔스럽게 대들고도 싶었지만, 괜히 그 얘기까지 했다간 계장님의 한 방에 강하게 되받아 친 소문 거리만 제공할 것 같아서 참았다.

 

괜히 집에와서 딸내미와 남편한테 조금 더 오바까지 해서 하소연을 했더니 딸내미의 엉뚱한 결론만 조장해 내고 말았다 ' 엄마, 때려치워뿌. 나는 나중에 돈많은 남자 만나야지'

'헉'

 

그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보다 더 평소를 가장하였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버린 분함.

호시탐탐 반격을 꿈꾸는 나.

남자들이여 제발 그런 어리석은 멘트는 삼가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