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엄마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

안동꿈 2009. 9. 19. 12:05

'엄마 여성 남보원이 뭔데?'

'응 그거, 저 미경이 엄마처럼 세련되고 남들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라디오에서 가끔씩 들리는 트롯트 노래 가사중 이상한 단어가 거슬려 엄마한테 물어보았더니, 그때 마을 부녀회장이었던 친구 미경이 엄마를 두고 '여성 넘버원'이라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쯤의 일인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두 아들은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공부를 하는 가운데 엄마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오셨다. 외갓집은 과수원이 몇 개에 그 동네에서는 제일 부잣집이었다는데 딸을 공부도 안시킨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경북 안동이라는 지방 특성상 돈이 있어 자식 공부시키는 것이 아니라 명분으로 매사를 판단하였으리라. 딸에게 공부를 시키는건 집안의 수치정도로 생각했을 정도다. 그런 짐작을 가능하게 한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정할 즈음 아버지는 우리 일가 친척중에 딸이 대학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니가 가려느냐고 했고, 그 일로 많은 갈등을 겪은 걸 보면 말이다.  

 

나는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엄마의 그 '여성 남보원'에 대한 판단 기준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평생 할머니처럼 긴 머리를 틀어 올려 다녔고, 화장 한번 한 적 없고, 쉴틈없는 농사일 혼자 해치우며, 평생 다리를 못쓰고 앉아 계셔서 대소변을 받아 내고 모든 수발을 다 들어 드려야 하는 시아버지를 봉양하며(이 일로 우리 엄마는 경북도지사가 주는 효부상을 받으셨다'), 시시때때로 자식들에게 지혜로운 말로 가르치는걸 잊지 않으시는 우리 엄마가 내겐 훨씬 훌륭해 보였다. 어릴적 친구들 앞에서는 엄마가 부끄러운 적도 있었지만, 속마음은 반대였고 지금까지도 가장 존경하는 분이 우리 엄마다.

 

어릴때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중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한 어머니가 있었는데, 며느리와 딸에게 베짜는 일을 시켰단다. 참(간식)으로 찰밥을 갖다 주었더니 며느리는 손에 물을 척 묻혀서 찰밥을 한웅큼 집어서 입에 털어넣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데, 딸은 찰밥 한번 집어 먹고는 손에 묻은 밥풀 뜯어 먹는다고 일을 못하더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머니가 콩을 볶아서 넣어 줬더니만 며느리는 콩 한 웅큼 입에 털어넣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데, 딸은 콩 껍질을 하나하나 까더란다

 

엄마는 나에게 그 얘기를 해주면서 어떤 교훈이나 생각을 주입시키려고 하지 않으셨다. 아이의 생각의 깊이 만큼 그 이야기는 점점 더 많은 교훈을 가슴에 새기게 하고 싶으셨을까. 그 이야기를 들은 나도 엄마에게 묻지 않았었다.

 

'바쁘게 길을 갈 때도 아무 생각없이 걷지 말고 그 다음에 할 일을 계획하면서 걷도록 해라', '화를 못내는 사람은 바보지만 화를 안내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이렇게 자주 말씀해 주셨다. 많은 지식이 있어서 그 지식으로 우리를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엄마가 옳다고 생각하신 것을 한번씩 들려주셨지만 이제껏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걸 보면 엄마가 현명하셨던 것 같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도 기억할 그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는가? 나는 잊어버렸지만 아이들은 기억할 그런 이야기가 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