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딸 by 리즈 오도넬

모든 직장 여성은 ‘일하는 딸’이다. 내 이야기이고 내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나는 새롭게 맡은 업무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던 중 가볍게 읽을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잡게 되었다. 그러면서 깨끗하게 읽고 난 후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친구에게 넘겨 줄 생각이었다.

 

읽을수록 그저 가볍게 읽히는 책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마케팅 전문가로서, 두 명의 자녀를 둔 주부로서, 급작스럽게 병을 앓게 된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저자의 치열한 성장 이야기였다. 거기에는 인생을 이해하는 깊은 철학이 배어있고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부모 돌봄은 자녀 돌봄과 다르게 급작스럽게 맞게 되는 상황이라서 받아들이고 감당하기에 더 어려움을 느낀다. 일하는 여성의 자녀 돌봄은 바쁘고 힘들지만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사랑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부모는 늘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분이었고 든든한 후원자였는데 갑자기 나의 고통과 어려움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처음의 저항과 반항과 불평의 마음을 돌이켜 돌봄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 깨달음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돌봄 제공이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업무에 열중할 능력을 빼앗고 아이들과 남편과 보낼 시간을 빼앗으며 휴식하고 놀고 편안하게 지낼 기회를 빼앗는다고...그러나 내가 하려는 일이 자식들에게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줄 것이고 어머니한테는 생애 마지막 시간, 가장 취약한 그 시간을 도와주게 된다는 것이었다.”

 

돌봄 역할을 받아들인 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인간관계는 바로 자신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돌봄이라면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되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돌볼 수 없다. 완벽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과 착한 딸이라는 타이틀로부터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럭저럭 괜찮음으로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실제로 일하는 딸들은 훌륭한 인재다. 유급 노동에 무급 돌봄 노동, 부모 역할까지 매일 여러 종류의 일을 해내면서 협상력, 문제 해결력, 세부 요소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진다. 또한 시간, 에너지, 자원을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는 전문가가 된다. 한 여성은 “우리는 일처리에 워낙 능숙해 슬픔과 피로가 밀어닥칠 때도 일을 계속할 수 있답니다.” 라는 말로 이를 표현했다.

 

일하는 딸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시스템 마련도 시급하다. 이 책의 저자 리즈 오도넬은 미국 보스턴에 살고 있으며 마케팅 전문가로서 회사의 고위직 임원이다. 그녀가 일하는 딸로서 가정과 직장과 돌봄 역할을 수행하면서 겪은 전쟁과도 같은 경험은 그보다 더 열악한 이 시대의 수 많은 일하는 딸들의 고충을 잠작케 한다. 일하는 딸들이 고군 분투하며 감당하는 1인 3, 4역을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 돌봄의 한정된 시기를 잘 통과하여 커리어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돌봄이 스트레스 가득한 일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스트레스만이 아니라 유익도 있다. 돌봄 스트레스는 누군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데서 온다. 이는 돌보든 돌보지 않든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이다. 부모님이 나이 들고 아프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스트레스의 치료제는 결국 적극적인 돌봄 역할이라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돌봄을 떠안게 되었을 때 그 일은 말 그대로 나에게 주어진다.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아무리 숨어 있어도 모든 일들은 나에게로 통하고 나를 통해 처리되기를 기다린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다. 가정과 직장과 돌봄의 한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스스로 방전되지 않도록 시기적절하게 연료를 주입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보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나 외의 나머지 것들은 나의 손이 닿지 않으면 후순위자에게나 차선의 단계로 넘어가고 그 나름대로 시간과 함께 해결되기도 한다. 그러한 일들에 대해서도 자책하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그 시기들을 통과해야 한다. 그것이 일하는 딸들이 돌봄을 감당하는 최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