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by 정세랑
베스트셀러가 자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작품들을 제때 볼 기회를 대부분 놓치고 만다. 시간이 여의치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 책이 있어 천천히 읽어볼 차선책이 있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책은 배우들의 표정 하나로 다 읽을 수 없는 등장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들을 나의 상황과 비교하며 천천히 숙고해 볼 수 있어서 좋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 즉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을 보며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일종의 ‘퇴마사’이자 ‘심령술사’라고 할 수 있다. 안은영은 아주 일찍 자신의 세계가 다른 사람의 세계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그로 인해 깊은 어두움과 침울함을 품고 있을 것 같지만 안은영은 발랄함과 굳건함과 코믹함과 용감함을 지닌 M고등학교의 보건교사이다. 안은영은 선한 에너지와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통해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 받는다.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는 마음, 아낌없이 퍼주는 부모의 사랑, 누군가가 잘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 등은 선한 에너지의 원천이다. 그러한 에너지가 모인 사찰이나 남산타워의 자물쇠, 간절한 염원을 담아 접은 종이학 등을 찾아 그 기운을 흡수한다. 그리고 그의 가장 큰 에너지원은 태생적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한문교사 홍인표다. 그들의 충전방법은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전달된다. 마음속에 품은 무형의 선한 의지와 염원이 악한 세력을 처리하는 에너지로 작동한다는 것이 매우 신비롭고 놀라웠다.
학업, 사랑, 우정, 반항 등이 폭주하는 대한민국의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 안은영은 그들의 아픔과 상처들을 세심하게 보듬는 따뜻한 선생님이다. 안은영은 죽은 자의 마음도 살아있는 자의 마음도 세밀하게 챙긴다. 그 치유가 어설프거나 미숙하지 않은 것은 그 보이지 않는 영의 출처와 성분에 대해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상상을 한 번쯤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영의 세계를 보고, 초능력이 있어서 악을 물리치고...
작가는 오직 쾌감을 위해 이 소설을 썼으며 한 번쯤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했다고... 그 쾌감을 독자들도 느끼기를 원했을 것이다. 우리도 한 번쯤은 상상하던 그것, 작가도 한 번쯤 상상하던 그것.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매우 쾌감을 느끼며 신나게 그리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작가와 주인공 안은영이 바라는 그 바람을 나도 바라며 마지막 결승점까지 왔다.
악을 볼 수 있다는 건 선을 행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정의와 선을 향한 갈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때로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하고 선뜻 행동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선과 정의에 대한 갈망이 있고 우리가 배운 지식과 많은 경험을 통해서 삶 속에서 선이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인지 때로는 어렴풋하지만 때로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과 정의를 위해 시간을 들이고 수고할 수 있다. 그것은 그저 상상과 쾌감의 차원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훨씬 어렵고 무겁지만 우리에게 한번 그리고 기회로 주어진 이 숭고한 우리의 인생에서 최선을 다해 수행해야 하고 또 할 가치가 있는 우리의 목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