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1, 2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역사는 문학의 전반에 많이 녹아 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어릴 적부터 교과서와 문학작품을 통하여 많이 들어왔다. 옛날이야기 듣듯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파친코는 자신의 나라를 빼앗은 나라에서 구박받으며 살아가는 백성들의 설움이 장장 2권의 책에 흥미롭게 담겨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고 했다. 역사와 재미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파친코 만한 작품이 없는 것 같다.
작가는 책의 속 표지에 "'고향'은 이름이자 단어이며, 강한 힘을 지닌다. 마법사가 외는 어떤 주문보다도 혹은 영혼이 응하는 어떤 주술보다도 강하다" 라고 찰스 디킨스를 인용하고 있다. "고향, 모국" 이라는 소제목과 함께 이 소설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 노아를 통해 찰스 디킨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였듯이 묵직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놓치지 않는 찰스 디킨스와 많이 닮아 있다.
1910년 일제가 강제로 조선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을 즈음 부산 영도에 하숙을 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나라의 통치권이 조선에 있든 일제에 넘어갔든, 매일 집안의 식구들을 부지런히 먹이고 내일 먹을 것을 준비하는 소박한 생활에 큰 변화는 없어 보였다. 딸 선자는 부모의 하숙 일을 도와 장을 보러 곧장 다녔다. 장에서 부유한 생선 도매상 한수의 눈에 띄고 그의 아이를 갖게 된다. 한수에게 일본에 아내와 세 딸이 있는 것을 알고 절망하게 된다. 이 사실을 일본에 있는 형님에게 가기로 하고 잠시 머물던 목사 이삭이 듣고 선자를 아내로 맞아 구원하기로 한다. 그들은 일본 형님네가 살고 있는 조선인 빈민가인 이카이노에 가서 함께 살게 된다. 그들은 거기서 첫째 노아를 낳고 둘째 모자수를 낳고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고상한 지식이나 고매한 성품도 이전의 삶의 습관도 전혀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매일매일 영혼과 육체를 갈아 넣어 싸우며 살아내야 겨우 가족들이 낌니를 떼우고 자식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을 형편이었다.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삶의 곳곳에 차별과 편견과 멸시는 나라 잃은 백성들이 받을 당연한 몫으로 여겨졌다. 노아는 공부를 잘했다. 일본 아이들의 무시와 차별도 잘 참아냈다. 모자수는 그런 무시에 힘과 폭력으로 맞섰다. 모자수는 학교를 그만두고 파친코에서 일하며 점점 성장해 갔다. 노아는 주경야독하며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합격한다. 가난한 형편에 어쩔 수 없이 등록금과 거주지를 한수가 지원하게 되었고, 한수는 계속하여 노아 곁을 맴돌고 접촉을 시도한다. 우연히 노아는 한수의 정체와 자신과의 관계를 알게 되어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는다. 그 후 노아는 이전에 하찮게 여기던 파친코에서 일하게 된다. 노아도 모자수도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똑똑하여 미국 유학을 다녀와 영국계 은행에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상사의 배신으로 회사를 나오게 되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솔로몬 또한 파친코 사업을 하게 된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선자의 어머니 양진, 그의 딸 선자, 선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4대에 이르는 그들의 삶 앞에 숙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차별과 멸시와 편견 앞에 정의롭게 대응했고, 성실하게 주어진 삶을 감당했으며 상대에게도 후손에게, 또한 스스로에게도 결코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나라의 울타리가 부재한 곳에서 그들은 각자 스스로가 나라와 사회의 울타리 몫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원했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감당해내었고 그들의 몫을 엄숙히 이행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삶이 이어지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의 나라를 품고 여기까지 옮겨왔다. 나라는 진정코 땅과 바다나 하늘만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몸에 그 모든 것을 지니고 지켜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