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 받아들이기
최근에 퇴직한 선배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한 선배는 한 달전에 65세 이상에게 주는 어르신 교통카드를 받았다면서 쑥스러워하며 보여준다. 아직은 새내기(?) 어르신인지라 지하철을 탈 때 "감사합니다"라는 멘트가 너무 신경쓰인다고 한다. 우리는 지하철 개찰구 통과시 들리는 멘트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당사자에게는 그 좋은 "감사합니다"라는 단어가 " 나 65세 이상 노인이오" 하고 공포하는 것이니 거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과 사회적 시스템이 인지하는 자신의 모습이 일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 일치가 반드시 행복의 척도는 아닐 것이다. 단지 그 경계선을 자연스럽게 넘어서는 것이 누구나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에 어머님의 모습에서도 그런 면을 보았다.
어머님은 팔십 중반이 되셨고 여러가지 노인성 질병을 갖고 계셔서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은 못된다. 어느날 어머님댁을 방문하여 함께 외출을 하게 되었는데 여러 개의 지팡이를 두고, 맑은 날씨에 굳이 우산을 들고 나가시려 하신다. 어머님께 지팡이 짚고 가시자로 두어번 권유했는데도 '지팡이 싫다' 하신다. 훨씬 안전하게 제작된 지팡이 대신 굳이 우산을 선택하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읽으면서 나이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이 교통카드, 지팡이, 보조보행기 등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젊은 사람들 눈에는 경제적인 도움이나 몸에 편안함을 주는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이제 늙고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점점 소멸되어 가는 생명이다' 라는 어두운 숙고들을 다 받아들이는 힘겨운 결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고명한 작가의 나이듦을 찬양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의 그 치열함과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나이듦의 여유와 성숙의 경지가 만족스럽고 좋다고 했던 것 같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몸과 마음의 조화로움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도 그렇게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외부 환경과도 조화를 이루며 나이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