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

20년지기 친구들에게 섭섭한 사연

안동꿈 2009. 10. 2. 08:58

"정숙아, 잘 지내나? 지난 수요일 종심이가 신랑하고 성당에서 결혼식 했데이. 수요일이라서 니는 교회간다고 연락 안했고, 우리는 증인으로 참석해 달라고해서 갔었다. 경태씨가 어릴 때 세례를 받고는 잊고 지내다가 이번에 종심이랑 애들 다 데리고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더라."

 

출장중에 휴대폰으로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나는 허탈해졌다. 대학 1학년때부터 줄곧 붙어다녔던 20년지기 친구 4명. 서로 사는 방법과 추구하는 것은 달라도 함께한 시간의 끈으로 인해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었다. 다들 고만고만하여 4명 모두 같은 직업을 갖고 있고, 내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모임을 가질 때 될 수 있으면 주일을 피해 주었고, 내 나름의 열심을 어떨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어떨땐 비꼬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친구들보다 3년정도 빠른 스물여섯에 결혼을 하여(한 명은 아직 결혼을 안했다) , 그나마도 명맥을 유지해오던 공감대가 더 줄어 들었다. 직장 다니랴, 애키우랴, 교회가랴 바쁜 나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자주 빠지게 되었다. 

 

그후 친구들도 결혼하고 직장맘으로 아이키우기 바쁘게 되면서 모이는 주기가 거의 1년주기로 바뀔 정도였다. 나는 이제 아이들도 어느정도 커서 엄마가 그다지 필요치 않은 시기가 되었고, 요즘은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했는데...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세월이 길어 결국 이런 사태가 온 것 같다. 나만 빼고 친구들끼리 다 모였다는 것과 친구의 중요한 삶의 변화에 대해 내게 알려주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공유했다는 것이 나는 몹시도 섭섭하여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나를 휘몰아쳤다. 내가 바쁠 때 친구들이 무작정 이해해 주기를 바랐었고, 내가 편리한 시간에 그들이 맞춰줄 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친구라는건 내가 양보한 만큼 네가 양보해야하고 네가 준만큼 내가 줘야하는 그런 손익을 엄격히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막연히 생각하였나보다. 그건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러나 그게 친구에게가 아닌 나에게 너그럽게 적용한 것이 문제였나보다.

 

이렇게 휘몰아치는 생각들이 후회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결심으로 귀결되어졌지만 친구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좀체로 사그라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이 섭섭한 마음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메신저를 열었다.

 

'종심아'

분명히 로그인이 되어있었는데, 한참 있다가 답이 온다. 물론 잠시 자리를 떴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응 오랜만이다 정숙아'

'너 지난 수요일 성당에서 식을 올렸다며'

 ......

 

친구는 그간의 상황을 들려주었고, 나는 섭섭한 마음을 비추진 않았다. 그냥 잘된 일이라고 격려했다. 명절지나고 다들 한번 만나자고 얘기하고 메신저를 끝냈다.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이제 부터라도 친구들을 위하여 시간과 마음의 공간을 좀 마련하자고 결심하고 이 사건을 종결짓기로 했다. 'OK 여기까지'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