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얽힌 큰 딸과 막내고모와의 비화
올해 우리집 추석 명절은 조용하게 시작된다. 시누이들이 다 시집가서 각자의 시댁에서 분주한 동안 하나뿐인 아들인 우리도 딸 둘과 함께 일찌감치 시댁에 가서 이것저것 준비한다. 준비래봐야 연휴동안 식구들 먹을 것과 친정에 다니러 올 시누이들 맞을 음식준비인 것이다.
어머님은 하나 뿐인 며느리가 무슨 음식에 특기가 있는지를 지난 16년간 함께한 시간으로 익히 아시는터라 미리 시장을 봐 놓으신다. 그러면 늘 하던대로 내가 이것저것 볶고 지지고 한다. 그때 그때 기후 탓인지, 나의 기분탓인지 알 수 없는 요인으로 요리 맛이 들쭉날쭉이지만 어머님은 거의 간섭 안하시고 늘 준비물만 챙겨주시고 쓰레기 갖다 버리시고 그리곤 맛있다고 칭찬해 주신다. 다들 겪어봐서 알겠지만 준비물 챙기고 주변 정리하기가 본 요리 하는것 보다 더 바쁘고 귀찮은 일이다.
서론은 대충 마무리하고, 오래전 명절에 있었던 사건중 우리 큰 딸내미가 대여섯살 쯤의 일이다. 네 명의 시누이가 아무도 시집가지 않은 터라 명절 전에 집안 분위기는 분주했다. 시누이들이 우리 딸내미들과 노는 사이에, 음식도 지금보다 더 많이 준비해야 하던 그때 부엌에서 어머님과 내가 한참 음식준비로 분주한데 큰 딸내미가 옆에 있는 막내고모한테 한마디 한다.
" 고모들은 왜 일 안하고 우리 엄마만 일해? "
철없는 딸내미가 분위기 이상하게 만드는 위험한 발언을 하고 말았다.
" 응. 고모들은 시집 가서 많이 해야 하니까 지금은 안하는거야 "
어머님과 내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얘기했지만, 원래 성깔있기로 소문난 막내고모. 그땐 한 성질의 초절정을 이루던 시기라 가만 있을 턱이 없다.
"야, 가시나야 니 너거집에 가. 니 맛있는거 하나도 안 줄거다."
" 싫어. 안갈거야 "
" 니 내 방에 따라와 "
이 정도되면 웃어 넘기던 어른들도 '어'하고 쳐다보게 된다. 딸내미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간 막내고모가 딸내미랑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르지만 딸내미는 열일곱살 많은 막내고모를 상대로 한마디도 안지고 눈물 한 방울 안흘린다. 어린 딸내미가 철없는 고모한테 한 대 쥐어 박기라도 할까 싶어 걱정은 되었지만, 한 성깔하는 시누이한테 뭐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님은 평소에 '경주 김씨는 여자들이 대가 세고 고집 세고 보통이 넘는다' 고 딸들 흉을 가끔 보시는 터라, 경주 김씨 여자들끼리 한판 하는데 순한 고부지간에는 아무 소리 못하고 말았다.
이번 명절에 같이 싸울 막내고모도 없어 심심한 중학교 3학년 큰 딸내미는 부엌에서 음식하는 소리만 나면
" 나도 할래. 나도 할래 "
를 연발하며 부엌으로 달려온다. 이번에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뒀더니 칼질한 손이 부르튼 모양이다. 오늘은 손이 아프다고 엄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