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강가 단상

친구가 입양을 결정하다.

안동꿈 2009. 10. 8. 00:06

그 친구가 결혼한지는 약 사오 년 정도 된 것 같다. 서른 일곱 쯤엔가 결혼 한걸로 기억된다. 나이가 들수록 이것저것 신경쓸게 많아져선지 그런것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친구의 남편은 아마 일곱살이나 여덟살 정도 많은 것 같다. 이건 그 친구가 그저 나이차가 많이 난다고만 했을 뿐 정확하게 말을 안했으니 내 기억 탓만은 아니다.

 

이 친구 부부는 형제자매가 많은 시골 출신들로서 아이를 많이 가지기를 원했지만 나이 탓인지, 다른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사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약 일 년전 긴 고민 끝에 그들은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을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월요일 오후 친구 부부는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찾아왔다. 발밑의 잔디 빛깔이 가을을 닮아가고, 머리 위로 플라타너스 큰 이파리들이 잔디 빛을 닮아가는 선선한 벤치에 자판기에서 따뜻한 율무차를 한잔씩 빼서 들고 앉았다. 친구와 얘기하는 동안 친구 남편은 주위를 배회하다가 우리가 다 마신 종이컵을 구길 즈음 돌아와서는 컵을 수거하여 버려주었다.

 

친구는 입양을 결정한 후 일 년이 넘도록 입양기관에 여러 절차를 밟고 기다리다 직접 찾아나서기도 하였지만 쉽게 아이와 연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은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다는 가장 큰 이유와 입양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 비해 보육원에서 아이에게 지원되는 지원금의 손실을 우려하여 쉽게 입양을 해주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였다. 정말로 아이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는 얼마전에 한 아이와 하루동안 같이 지낸 일을 이야기했다. 그 아이를 데리고 잠옷과 원피스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며 놀이동산에서 하루를 즐겁게 놀았는데 마음이 아팠던건 가게에 가서 좋아하는 과자를 고르라니까 뻥튀기 과자를 고르며 보육원에서 이걸 마음껏 먹어보는게 소원이었다면서 더 맛있는 걸 고르라고 해도 꼭 그걸 골라서는 아껴서 종일 먹더란다. 그리고 저녁에 함께 잘 때 잠옷을 입고 자는건 처음이라고 정말로 좋아하며 선물로 받은 원피스를 깔끔하게 개어서 자기 가방 위에 얌전히 올려 놓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6시30분에 정확하게 일어나더라고. 그러나 아이의 건강상태와 여러가지 일로 그 아이와 맺어지지 못했다고 하며 안타까워 했다. 

 

친구는 우리구에 있는 한 보육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아이를 소개받고 싶어서 그 업무 담당자와 연결시켜주라고 내게 찾아왔던 것이다. 담당자가 다행히 아는 직원이라 그 얘기를 했더니 부부간에 문제는 없느냐, 수입은 어느 정도냐 등 여러가지를 묻는데, 친구는 남편이 억대의 연봉을 받고 있어서 재정적인 것에 전혀 문제가 없었고, 20여년간 알아온 친구나 약 사오년정도 보아온 친구 남편을 볼 때 나를 담보로 잡아도 좋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 직원은 업무를 담당하면서 요즘 보육원에서 아이의 능력에 따라 대학까지도 지원해 주니 보육원에서 양육되는 것도 괜찮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란다. 아이가 가정에 입양되어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제법 서늘한 바람이 볼을 스치는 벤치에서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이를 낳지 못한 친구 부부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그리하여 피도 섞이지 않은 낯선 아이를 데려다가 정을 붙일 그 모든 번거로움에 대한 염려도 전혀 들지않았고 내가 해산의 아픔을 겪어 낳은 아이도, 어떤 사연으로 태어난 아이인지는 모르나 친구에게 입양되어질 그 아이도 모두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 아이라는 생각. 오직 그 생각만 머리를 맴돌았다.

 

우리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사랑을 베풀어주고 그들은 그 사랑을 먹고 격려와 용기와 안정을 누리며 꿈을 가지고 달려가고 그 꿈을 이루고 그리하여 그걸 함께 기뻐하는 그 가족애에 꼭 핏줄이어야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왔다.

 

용기있는 결정을 한 친구 부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평생 한 가족이 될 아이를 속히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